김준철의 와인교실(33)
유능한 소믈리에(Sommelier)란?
김준철 원장 (김준철 와인스쿨)

‘와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소믈리에(Sommelier)’라는 것이다. 다소 낯선 단어였지만, 와인을 배우는 사람이 가장 먼저 익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와인이란 포도재배, 양조, 유통, 소비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와인 관련 직업은 포도를 재배하는 직업, 와인을 제조하는 직업, 와인을 유통시키는 직업, 그 다음 와인을 서비스하는 직업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을 만들지 않고, 수입하여 유통시키고 그것을 소비하기 때문에, 와인관련 직업 중에서 자연히 소비의 최종 단계에서 와인을 서비스하는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와인 전문가’로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 소 몰고 다니는 사람
Sommelier를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불어로서 ‘(레스토랑의) 포도주 담당 웨이터’, 불어사전에는 ‘(큰 집, 호텔, 기숙사 따위의) 식료품 담당자’, ‘(카페, 요리점 따위의) 술 담당 보이’라고 되어있다. 그 어원을 보면 고대 불어인 ‘Bête de Somme’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말은 영어로 ‘Beast of Burden’ 즉 짐을 나르는 동물이며, ‘Sommelier’는 ‘목부’, ‘목동’이었다. 이 단어는 점차 전문화되어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실의 짐을 운반하는 직책이 되었고, 그러면서 궁중에서 세탁, 청소, 식품, 지하 저장고를 관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1700년대 이전에는 왕궁에서 소믈리에(Sommelier)는 ‘식탁을 차리고 와인과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연회 따위에서 술잔을 따라 올리는 사람’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이들은 식품을 단순히 준비만 하지 않고, 그 상태를 확인하고 주인이 먹기 전에 맛을 보면서 독물이 있는지 확인하였다. 이렇게 출발하여 일이 전문적으로 나뉘면서 와인 서비스를 전담하는 직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장난삼아 ‘소몰리에’라고 해도 크게 틀린 뜻은 아니다.
◇ 와인 감별사?
그런데 언론에서 소믈리에를 ‘와인 감별사’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이 뜻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감별’이란 식별한다는 뜻으로 예술품 등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을 말하지만, 예술품 등 판단에는 감별이란 말보다는 감정이란 말이 더 일반적이다. 감별이란 ‘병아리 감별사’와 같이 단순히 가부 판단을 요구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렇다고 소믈리에를 ‘와인 감정사’라고 부르는 것도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와인을 감정하는 직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기회가 있으면 모여서 와인을 감정하는 정도다.
소믈리에는 와인 저장실(Cellar)과 레스토랑 일을 맡아보고, 모든 음료수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화려한 제복을 입고 목에 은빛 장식품을 걸치고, 손님에게 예의바른 사람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식사주문이 끝나자마자 주문한 음식을 알고, 바로 와인을 추천하거나 와인 리스트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레스토랑의 모든 와인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와인의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 단골손님의 취향을 파악하고, 손님과 와인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손님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서, 돕는 일이 우선이라는 점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와인 리스트의 작성, 와인의 구입, 셀러의 관리 및 기타 비품을 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서비스맨으로서 인격을 갖추고, 기획, 경영능력이 있어야 하며, 종업원의 와인 및 서비스 교육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소믈리에는 해박한 와인지식은 물론, 그 레스토랑의 와인은 물론, 손님이 주문한 요리에 대해서도 그 조리법, 맛 등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 소믈리에 자격은?
소믈리에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영화에서 보면 나이 지긋한 분이 말끔한 복장으로 와인을 따르는 모습으로 나타나듯이, 경험이 많은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에 들어온 순간 손님과 종업원의 문제점이 한눈에 파악되어야 하고, 이를 즉시 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며, 와인을 주문하지 않은 손님이라도 와인을 소개하여 마시도록 유도하고, 주문한 와인이 재고에 없으면 즉시 대체품을 추천할 수 있는 임기응변이 뛰어나야 한다. 이런 능력은 자격증 여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경험에서 나온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국가공인 소믈리에 자격제도가 없고, 여기저기 단체에서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다. 와인 관련 소믈리에 자격증은 80여 종이나 된다. 모두 자기 것이 정통이라고 떠들고 있으니까, 소믈리에 자격증에 대해서 매달릴 필요가 없다. 와인 서비스 업무에 경험이 많은 사람을 주변에서 소믈리에라고 불러주거나, 자신이 소믈리에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 소믈리에에 대한 오해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해야 한다. 저녁 때 친구도 못 만나고 새벽까지 일해야 하고, 하루 종일 무거운 물건을 들고 걸어 다녀야 하고, 취향이 특이한 손님이나 취한 손님의 비위도 잘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샤르도네’는 이제 지겹다고 ‘샤블리’를 시킨 사람에게 “아하! 그렇습니까? 좋은 샤블리 하나 추천해 드리죠.”라고 맞장구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런 손님들은 밤새도록 인터넷을 뒤져서(그 시간 있으면 잠이나 더 잘 일이지) 겨우 몇 천 원 싼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사실 와인 애호가 중에는 까다로운 사람이 많기 때문에 소믈리에는 더 많은 공부와 아량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런 고생을 각오하고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결코 화려한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경지에 이르면 와인 전문가로서 명성이 쌓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포츠 스타와 같이 오랜 세월 동안 상당한 경험 혹은 고생과 공부가 필요하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앉아서 글라스에 코를 박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와인 향을 묘사하거나, 몇 년 산 어디 것이라고 알아맞히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소믈리에는 가격대비 훌륭한 와인을 선별하여 이를 잘 팔아야 한다. 라면 장사가 잘 요리하여 라면을 잘 팔면 되는 것이지, 무슨 라면이라고 눈감고 맞혀봐야 장사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 유능한 소믈리에란?
소믈리에에 대한 다소 과장된 인식 때문에 와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이 직업을 선호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낳기도 했지만, 소믈리에는 자격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와인 맛을 잘 알아맞힌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 달렸다고 봐야한다. 결국 유능한 소믈리에란 레스토랑에서 와인 매출을 요리 매출보다 더 올릴 수 있는 와인의 세일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소믈리에 때문에 와인 매출이 요리 매출보다 더 많다면 그가 바로 유능한 소믈리에며, 다른 레스토랑에서 유혹의 눈길이 많아질 것이다.
◇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