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에서 술을 마시는 주당이여
박정근 (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작가, 시인)
요즘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 중의 하나가 종로 익선동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종로 3가 기장교회를 다니고 있다. 자연스럽게 예배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종로3가에서 술을 마시곤 한다. 그래서 음주에 대해서 다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음주는 곧 죄를 짓는 것이라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보수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편이다. 술도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하나의 음식일 뿐이다. 다만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위해서 삼가야 한다. 건강을 위한 음주의 절제는 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관리를 위한 지혜인 것이다.
교회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다양한 소재로 대화를 즐긴다. 빈번하게 들리는 술집은 동태탕집, 중국집, 삼겹살집이다. 또 하나의 술팀은 고등학교 동창들로 구성된 중창단 팀으로 가장 빈도수가 높은 술집은 익선동 삼겹살집이다. 사실 익선동은 한옥관계로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여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그래서 이 근방에서 돈이 없는 노인들이나 빈자들이 골목에서 전 종류의 값싼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익선동이 지금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필자는 황야문학이란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어서 시즌별로 문예지를 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진행한다. 행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면 뒤풀이를 간단하게 가진다. 문인들은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값싼 전집이 제격이다. 허리우드극장에서 종삼쪽 도로변에 간이 식탁을 내놓고 마시는 술맛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다. 서민적으로 술을 마시는 행태는 매우 편한 느낌을 준다. 그런 이유로 값싼 전집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마시는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요즘 종로구청이 익선동을 한국적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을 하고 난 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익선동 골목에 돼지고기 전문점이 즐비하게 들어선 후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게다가 한국문화 볼거리가 많아진 익선동 골목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장 낙후되고 한산했던 곳이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급작스럽게 변화했다. 익선동이나 송해거리 등은 저녁이 되면서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괜찮은 식당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돈이 궁한 노인들이 돌싱이 된 후 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박카스 아줌마와 성관계를 맺는 곳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또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이 만원 한 장 들고 나와 간단한 안주에 막걸리나 소주 한 병 걸치고 들어가는 곳이라는 오명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오명을 쉽게 극복한 종로 3가 익선동의 변화는 자못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밀려오는 젊은이들보다 밀려나는 노인들의 갈 곳이 어디인가이다. 지난 주 필자는 친구들과 평소에도 노인들만이 즐겨가는 파고다공원 뒷골목을 찾았다. 송해 거리의 식당들이 젊은이들로 너무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설마 이렇게 후진 곳까지 청년들이 오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골목에 들어서자 우리 판단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업원 한두 명에 노인들이나 노동자들이 한적하게 술을 마시던 곳이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손님의 주조는 청년들로 완전히 바뀌었고 종업원 다섯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2차인지라 간단하게 소라무침을 주문하고 소맥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당기는 시간이라 간단한 밑반찬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시다 보면 술안주가 바로 나오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미 주문을 받은 안주를 마무리하느라 좀처럼 소라무침은 나오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이 되어도 안주가 나오지 않고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만 연거푸 전달했다.
아마 평소와 같으면 이 정도로 안주가 지체되면 화를 내며 밖으로 나와 버렸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다른 술집에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라도 기다렸다가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예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익선동쪽 술집은 청년들에게 물려주고 국일관쪽 골목으로 후퇴하는 것이 좋겠다고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집도 경제력과 주류손님의 숫자가 영토를 결정하고 유지한다. 이제 노인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술집영토를 물려주고 좀 더 후진 곳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경제권이나 손님 숫자에서 청년들을 따라갈 수 없지 않은가. 뻔 한 연금에서 조금씩 용돈으로 쓰는 노인들이 돈을 버는 청년들에게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밀려나는 노인들이 푸념을 할 수도 있고 억울하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을 드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손님을 선택하느냐는 돈을 벌어야 하는 술집주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술집주인이 술값을 올려버리면 술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손을 털고 나와야 한다. 다소 씁쓸한 점은 음주문화는 청년이나 노인이나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자본이 문화를 점령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세대가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만들고 즐겨야 사회가 건강해진 다. 그런데 노인들이 즐기던 술집마저 경제적인 논리로 밀어내는 것은 사회적 소외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술집을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스스로 노인세대로 인정하지 않는 필자는 익선동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여러 그룹에서 주당이라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약간은 비감어린 감정을 느끼며 노인들을 밀어내는 상업주의에 대해 저항을 하고 싶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행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술을 마시는 시인인 필자는 이렇게 시를 조용하게 읊조렸다.
익선동에서 술을 마시다
외로운 사람들아
익선동에서 마음껏 술을 마시자
돈 만원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곳
소주건 막걸리건 한 병 마시면
옛날 잘 나가던 시절
이런저런 무용담을 늘어놓자
서러운 사람들아
익선동에서 술이 얼큰한 채
소리치며 노래도 부르자
돈 많고 잘난 놈만
술을 마시라는 법은 없다
빠듯한 연금생활자도 싸구려 안주에
소주 한잔 걸치면
누구나 잘난 놈을 씹을 수 있었던 곳이
익선동이다.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아
나이 좀 먹었다고 기죽지 말고
익선동에 모여 술을 마시자
싸구려 전집 길가 간이 식탁에서
세상이 떠나가도록 떠들어가며
힘센 놈들을 안주삼아 씹어보자
익선동 해방구에서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살아있다는 객기를 부리면
우리도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