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 주조 李弦俊 대표
“술은 기다림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좋은 술 얻어
주류제조회사인 (주)갓바위(대표 李弦俊) 주위는 온통 자두농장이었다.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자리 잡고 있는 (주)갓바위주조를 찾은 날은 때 마침 자두 꽃과 복숭아꽃이 만개할 때라 꽃대궐속에 술도가가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경상북도 영천이 자두의 고장임을 실감케 했다.
사실 매화나 복숭아, 배꽃이야 도시인들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과일 꽃들이다. 그렇지만 자두 꽃을 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주)갓바위로 가는 길목엔 온통 자두농장이라 연초록빛이 감도는 자두 꽃들이 새롭다.
‘자두’의 순우리말은 ‘오얏’이다. 자두라는 이름은 복숭아를 닮은 열매의 색이 진한 보라색이므로 자도(紫桃)라 하다가, 이것이 변해 자두가 된 것이라 한다.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얏꽃(자두 꽃)은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은 꽃이기도 하다.
영천의 자두 맛이 좋기로 이름난 것은 이 고장이 산 좋고 물맛이 좋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자고로 식물이란 자연적인 조건이 좋아야 잘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더 더욱 (주)갓바위가 터 잡고 있는 애련리(愛蓮里)는 물맛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현준(53세) 대표가 이곳에 양조회사를 차린 연유도 이곳 옛지명을 천곡(泉谷)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마을 앞에 있는 샘에 천사들이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어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달았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에야 천곡이란 샘은 사라졌지만 물만큼은 풍부하고 술 빚기엔 더 없이 좋은 물이 솟고 있다고 한다.
갓바위의 염원 담아 회사 이름을 ‘갓바위’로 지어
이현준 대표가 주조회사를 차리면서 회사 이름을 ‘갓바위’라고 지은 것은 팔공산(八公山,1192.3m) 갓바위에서 따온 것이라 했다.
팔공산에서 동으로 뻗은 관봉(850m)에 위치해 있는 갓바위는 높이 4m의 불상이다. 정식명칭은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갓바위에 치성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하여 입시철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명관광지다.
이 대표는 “갓바위의 염원을 담아 갓바위 술도가를 차렸는데 생각만큼 좋은 성과는 얻지 못한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그렇지만 갓바위주조에서 빚은 술을 미국에도 수출할 만큼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인정해주는 술도가이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서울에서 수입주류를 취급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에선 이렇게 많은 술을 만들어서 수출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래서 “나도 직접 술도 만들어 보고 유통도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 일입니다만….”
전국 최초의 전통주 소매업면허를 받다
이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허름한 트럭을 한 대 사서 이 트럭으로 전국의 술도가를 비롯한 술을 취급하는 곳을 찾아 유람 길에 오른다. 승용차 대신 트럭을 구입한 것은 장차 술 유통을 위해서라고 했다.
때 마침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우리의 민속주 복원에 열을 올릴 때라 전국에는 많은 주조들이 생겨나고 있을 때였다.
이 대표는 이런 민속주를 전국에 유통시키면 장사가 되겠다 싶어서 세무당국에 전통주 유통도매업을 신청했지만 반려되기를 거듭했다.
이 대표는 허가당국에 대해 “수입 주는 유통도매업을 허가하면서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가 만든 술 도매업을 허가해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그래서 받은 면허가 전통주소매업이다. “이 전통주 소매업 면허가 전국 최초일 것입니다.” 때문에 자칭 타칭 이현준 대표는 국내 최초의 전통주 유통사업자가 되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전통주를 유통하다 보니 주질이 문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전통주가 처음 선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좋은 술이 시장에 나왔다면 지금처럼 전통주나 막걸리가 어려움에 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통업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내기위해 주조사에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주조사들은 이 가격에 맞추다보면 질 나쁜 술을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에 화가 치밀더라고요, 그래서 유통사업도 집어 치웠습니다.”
이 대표가 택한 길은 일본 유학이었다.
“일본 술을 공부하러 간다곤 했지만 우리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어서 한 3년 술만 마시다가 왔죠” 이 대표는 그 때 입국(粒麴)만드는 법도 배우고 일본사람들이 술 빚는 원칙도 눈여겨 두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술은 자연환경이 좋고, 물맛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찾아 나선 곳이 지금의 갓바위 주조 터였고, 1999년 3월에 (주)갓바위를 설립했다.
“술은 기다림이다”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뭔가 새로운 술을 개발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공장에서 숙식을 해가며 2001년에 개발한 술이 천연의 붉은 색을 띤 6% ‘홍국(紅麴)막걸리’였다. 이 술은 붉은 누룩을 천연 발효시켜 전통적인 비법으로 빚은 술로 과일향이 나는 순곡주다. 특허출원도 낸 술이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천국산수유를 개발했다. 천국산수유는 13% 약주술로 최고급 산수유와 흑미를 가미하여 3차 발효공법으로 오랜 동안 숙성시켜 독특한 과일향이 나는 약주술이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3년 4월에는 석류및 홍국을 이용한 주류제조 방법을 개발 하는 등 끊임없이 술 개발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술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개발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이게 아닌데’하며 조심스러워 지더라고요.”
이 대표는 술을 빚으면서 마음먹은 대로 술맛이 나오지 않으면 쏟아버리고, 술 독을 내동이치기도 수 없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술은 기다림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재료로 술을 담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고, 비고 오고 안 오고, 바람이 불고 안 불고, 날씨가 덥고 선선하고가 다르듯이 술 담그는 것도 이런 자연의 변화에 맞춰서 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효모가 살아가는 경험을 몸으로 배우고 나서 빚은 술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면 대중들은 이를 마시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게 바로 우리의 전통주가 되는 것이다.
앞서 나간 전통주 6차산업 실패의 쓴잔도 마셔
요즘은 ‘찾아가는 양조장’이 전국에 18개소(2015년 말)나 되지만 2013년 전만 해도 전통주 산업을 6차 산업화하여 이를 실천한 사람이 이현준 대표가 유일했다.
양조장에 대한 환경개선, 품질관리, 체험 프로그램 개선, 홍보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체험-관광이 결합된 지역 명소로 조성하고 나아가 체계적인 양조장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 전통주 6차 산업이다.
대구시내에 꽤 큰 터에 전통주 박물관을 짓고, 술과 누룩을 빚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을 마련했다. 술을 빚는 한편 그 동안 배운 요리(술안주)도 직접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너무 앞서가다 보니 생각대로 사업이 되지 않아 막대한 손해만 보고 접었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발 앞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그 때 박물관에 전시했던 소장품들은 지금 술공장 한켠에 전시되어 있다.
이 대표는 술도가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안주가 있으면 술생각이나고, 좋은 술이 있으면 안주가 생각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술과 궁합이 맞는 요리를 배우기도 했고, 한약을 이용한 술 개발을 위해 한방자원학과에서 한약을 공부하기도 했다.
‘반하리’와 ‘날이 좋아’ 미국으로 수출길 열려
이 대표는 고향 떠난 교민들에게 향수를 달래줄 수 있는 술 개발에 착수한다. 그래서 영천 명품인 MBA포도를 이용하여 포트와인(주정강화와인)을 성공시켰다.
미국 거주 교민들과 동양인을 타켓으로 알코올 17%인 ‘반하리’와 19%인 ‘날이 좋아’를 개발했는데 도수가 다소 높긴 해도 목넘김이 부드럽고, MBA포도 고유 향을 느낄 수 있어 교민들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와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술들은 아틀란타에 있는 바이어를 통해 연간 100만달러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 해 11월 4일 1차 선적분이 수출됐다. 지금 갓바위주조에서는 수출물량대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작은 주조장에서 매달 5만~10만달러 어치(약 2만 5천병)씩 수출물량을 생산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벅찬일이다.
갓바위의 술들이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꾸준하게 이른바 스펙을 쌓은 결과치다.
2006년 10월에는 노동부로부터 클린사업장 인정을 받았고, 2007년 2월에는 미국 FDA 공장 등록을 한 우리술(Woori sool Co.LTD)회사를 설립하고 에이전트 계약 및 수출을 시작했으며 2009년 3월에는 경북대학교 발효연구소와 MOU를 맺었다.
그리고 2010년 4월에는 HACCP 인증, 2011년 4월에는 ISO14001도 인증을 받는 등 남다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물인 것이다.
전통주업계에선 이런 이 대표에 대해 지나친 원칙 주의자라면서 전통주에 빠진 사람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렇지만 이 대표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우리가 좀더 노력을 해서 지금보다도 좋은 술을 개발하여 프랑스의 와인이나 독일의 맥주, 일본의 사케, 중국의 빠이주, 영국의 위스키 같은 술을 개발해서 우리의 술도 세계 술시장에서 당당하게 겨룰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갓바위주조에서 생산되는 술은 6% 탁주, 7% 동동주, 13% 산수유(약주), 12% 야관문 등이며 아직은 내수 시장에 내놓지 않은 17%인 ‘반하리’와 19%인 ‘날이 좋아’를 생산한다.
갓바위주조가 위치 해 있는 애련리에는 송곡서원(松谷書院)과 북산서당(北山書堂)이 있으며, 사찰로는 봉루암(鳳樓庵)이 있다.
이 대표의 꿈은 이 같은 문화재와 주조공장을 연계한 체험관광이다. 주변 자두농장이 이를 뒷받침한다면 훌륭한 체험관광이 이루질 것 같다.
<애련리 현지에서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