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성기 (아우르연구소 대표/경제학박사)
술 특별한 물진, 그 정책의 현황평가와 과제(下)
우리나라 주류정책의 위상
다시 한 번 술이 특수한 물질이라는 데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누구일까? 술이 쌀이나 고기, 야채 등과 같은 속성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이 일반상품과 같을까? 특수한 기능과 속성을 가진 특수물질이다. 적어도 전 세계적으로 정책적 동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책의 현장에서는 그러한 기본속성을 자주 잊는 듯하다. 정책의 역사를 보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근본원인은 술의 정의를 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적확한 정책의 수립에는 정책의 근간과 목표에 대한 정책당국자들의 일관성 있는 입장이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주류정책의 기본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1965년의 양곡관리법은 국내산 쌀 대신 수입산 밀가루와 옥수수 등으로 술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탁견이었을 수 있겠지만 미래를 본 정책은 아니었다. 최근으로 오면 그 정책은 정책목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견으로 결정한 정책이 분명하다. 적어도 술의 속성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 정책은 전통주를 몰락시킨 산업경제 문화적 손실이외에 건강차원의 문제를 발전시켰다.
저가의 원료유입이 중요해진 산업에서는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유전자 조작 종자와 농산품시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건강을 외국농산물에 쉽게 노출시키는 상황을 맞게 한 것이다. 저가 원료의 수입과 저가 주류의 양산은 과폭음을 술자리를 늘려 건강위해성을 늘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책을 통해 모든 위험을 미리 예방하기는 어렵다. ‘정책의 일선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뒷담 화를 하기는 쉽지 않은가?’하고 반박을 할 수는 있다. 그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세밀한 검토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이다. 당시 시장은 말없이 순응을 했고, 정책은 정부가 통제하는 세월이 아니었던가.
정책당국자들이 우리나라의 주정이 저비용 소주원료를 생산해 수없이 늘어나는 산업노동자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입장을 세웠을 수 있다. 그 결과 질 좋은 싼 술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산업 체제를 갖춘 것이 정책성공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가의 농산물로 생산된 술이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가정도 없었고 그에 대한 합의도 거치지 않은 것은 정책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당시의 소영세 제조업자들이 총체적 몰락사태를 맞게 된 것은 누구의 탓일까. 주류에 관한한 다양성과 창의성이 사라지게 된 것은 누구의 오판일까.
제조부문의 규제완화에서도 신중한 검토를 거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간 시설기준, 진입, 첨가물 등 다양한 부문의 규제완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시설이나 진입장벽은 품질과 위생관리를 전제로 한 후 풀어야 맞다. 우선 풀고 나면 시장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에 토를 달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 재화는 그래도 된다.
자유경쟁시장의 마법을 단기에 채용하는 일은 특수한 물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완화의 조건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이 특별한 물질이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자유 시장에 맡기고 시장을 주시하는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작은 문제가 있더라도 문턱을 유지했을 때에 큰 문제가 없다면 문턱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런 관찰과 협의에 나서는 것이 우선이다. 간단한 비용편익분석을 거쳐 규제완화에 찬성하는 방식은 정책실패를 날을 가능성에 노출된다.
정책실패가 분명해지면 완화된 정책을 다시 강화하고 실패의 원인을 수정하고 오류의 상황을 틀어막을 수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의 피해자에게 보상이 어렵고, 한번 실행된 정책을 되돌릴 때 발생할 시장실패 또한 누구도 책임지기 어렵게 된다.
그만큼 주류정책은 창졸간에 여론이나 정책당국자 몇몇, 학계의 단견참조로 단행할 일은 아닌 것이다. 유통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유통시장의 규제를 풀고 자유경쟁으로 갈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자본력이 우세한 대기업이 유통시장을 장악해갈 가능성이 크다는데 반대할 수 있을까. 그 대기업은 거대소매상일 수도 있고 대형물류업체일 수도 있고 대형제조업체일수도, 외국에서 진입한 유통사일수도 있다. 소위 공급독점과 수요독점이 발생하기가 쉽다.
개별상표를 요구해서 제조업체의 존재를 망실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공급량과 가격결정권을 손에 쥘 테니 말이다. 경쟁업체가 나타나면 약탈적 가격덤핑도 불사할 수 있다. 계열사의 제품을 고집할 경우 소비자 선택권에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거래비용이 줄고, 물류를 체계화하고 소매점들에게 편리한 도매상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품질안전이 선진화 되고 창고위생관리가 강화될 수도 있다.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통상적 상황에서는 시장지배력을 갖는 순간 이윤과 편리성은 대기업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유통단계의 축소로 소비자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현실이 아닐 수 있다. 이리될지 저리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심층 분석을 하고 논의하는 자리는 필수적이다.
문제는 그 정책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소매면허는 신고제다. 사업을 하면서 ‘술을 팔 것입니다.’라는 신고만 하면 ‘오케이’ 허가가 난다. 이러한 정책결정은 오래전 민생차원에서 과거 정부에서 결정된 일이다. 시간이 한참지난 지금, 이제 와서 국민건강이나 청소년음주보호를 목표로한 당국자들이 소위 ‘주류전문판매점제도’를 설치하자고 한다. 서구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음주문제를 틀어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력히.
그런데 그 주장은 현실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그 또한 단순히 술과 국민건강의 관련성만을 대상으로 검토하는 정책당국은 주류정책의 담당자로서 낙제점을 받을 수 있다. 주류정책은 건강 뿐 아니라 민생, 정책의 역사, 주류산업의 3단계구조상 문제, 문제발생시 정부의 통제가능성, 민간의 음주문화 변화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옳은 복잡한 과제다.
단순한 질문을 해보자. ‘음주문화가 나빠지지 않고 있는데, 제도변화를 과감히 단행해 시장참여자들에게 눈물을 안겨주는 것이 맞는 정책결정일까?’ 제도변화는 간단히 몇몇의 목소리 큰 이들의 주장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시장의 규칙변화를 쉽게 경직적으로 결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성숙한 시장은 다른 관리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론적 탁상공론으로 주류정책이 결정되어서는 정책실패를 낳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에 대한 건강 가이드라인도 급히 변한다. 건강관련 단체에서는 ‘5잔까지는 남성의 적정음주량’이라고 발표한 후 급히 보건당국은 ‘술은 한잔이라도 마시면 암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수정된 의견을 발표했다. 술소비자에게 당장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안긴다. 관계당국자들이 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갖는 훈련이 필요해진다.
지구환경의 보존을 위한 공병관리 정책이 주류정책의 한 주제하는 것을 감지하는 이들이 아직 많지 않다. 그 같은 사회적 규제는 강화 분야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주류산업에 환경규제를 가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기금도 소비자들의 미반환보증금에서 모은 것이니만큼 잘 사용되어야 한다.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안 된다.
규제냐, 경쟁이냐?
‘규제냐 경쟁이냐?’라는 질문에 답이 하나일 수 없다. 규제에도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가 있다. 좋은 규제는 성숙한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합의된 정책목표를 구현할 수 있는 규제다. 나쁜 규제는 그에 반하는 규제다. 만약에 합의된 시대적 정책목표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면, 면허규제 완화는 나쁜 규제가 된다.
왜냐? 예를 들어 도매면허규제를 완화하면 많은 소형업체와 대형업체가 뛰어들 것이다. 당장에는 업체가 늘어 고용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결손업체들로 부터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 후 초대형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주류도매업의 경우 대체로 자본력이 대세를 좌지우지 하는 경영맥락하에 있기 때문이다. 대형도매업체가 소매상을 장악한 후 제조단계에 가격인하를 요구할 때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제조사는 다시 공급사슬의 앞 단계로 넘어가 원료제공자들에게 저가의 원료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초대형도매자는 중소도매자들의 시장을 다시 약탈적 가격인하로 빼앗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장은 단순화되어 가게 된다. 계열화로 연결될 경우 극단적인 경우 시장과 제품은 외관상 복잡하게 보여도 소유관계는 간단해질 것이다. 물류와 창고의 선진적 관리가 시도될 것이다. 요즘 유명해진 로봇들이 하역을 담당하게 될 경우까지도 생각해 보면 일은 더 커질 수 있다.
소매상을 다수 장악하고 있으므로 물류차량도 동선을 최적화하게 될 것이다. 운전기사도 최소만 필요해지고, 창고인력도 최소인력만 필요해질 것이다. 해고가 진행되고 노동이 축소되는 것이다. 그때 고용은 당연히 줄 것이다. 규제완화의 폐해는 그런 과정을 거쳐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모습의 시장이 아름다운 시장일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일까?
좋은 술이 만들어지려면 좋은 원료를 가지고 술을 잘 만들어야 한다. 원료와 제조단계에서는 품질규제가 좋은 규제다. 우리 도매업체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현 단계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가치생산의 질적 상태와 고용의 위상을 볼 때 다른 대안에 비해 우월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면허규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좋은 규제다.
소매단계는 현재 음주문화가 개선중이라는 정황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음주문화가 악화되고 있다면 민생에 문제가 있어도 판매경로를 통제해야 할 지 모른다. 경로자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과폭음 음주 자에 대한 예방관리가 정책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은 살아있는 환경이므로 정책 환경을 잘 관찰하고 정책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정황들을 감안할 때 향후 주류산업의 정책과제는 정책전문가들이 육성되고, 이해관계자들의 토의를 배제하지 않는 과정을 거쳐 다루어져야 한다. 그때 창조적 결정이든 파괴든 가능하게 된다. 주류정책의 시발점은 술에 대한 정의가 우선이다. 그에 합의하는 일부터 정책당국이 앞장서 준비해야 할 필수적 과제가 된다.
첫 단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단추를 무시하고 주장해 왔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목표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부족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야 하는 일이다.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자면 할 일은 해야 할 것이다. 술은 일반적 상품과 속성상 같은가, 다른가? 술은 재차 생각해 보아도 특수한 물질이 아닌가? 그에 걸맞는 정책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구매력평가지수를 감안할 때 1인당 소득이 3만 5천불이 넘는 선진국이다. 통상 1만 불이 넘어갈 때 주류정책이 정상화되기 시작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정책환경조성도 노력도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제대로 자리잡아가야 할 분야가 주류정책의 현장이다. 비정상적인 ‘삶과 술’의 정상화는 주류정책의 정상화에서 시작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