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선과 안경
임재철 칼럼니스트

책을 읽는데 언젠가부터 글자가 깨끗하게 보이지 않았다. 돋보기를 끼고 보는데도 그랬다. 눈을 비벼도 보고 인공눈물을 넣어 보기도 하고 안경을 깨끗하게 닦아도 봤지만, 눈이 불편해 잘 읽지 못했다. 그동안 길을 걸어오면서 세상의 온갖 풍상을 보았던 눈이었는데…, 갈수록 오른쪽 눈 옆쪽으로 뭔가 아른거리기도 하고 눈이 피곤했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새로 맞췄다. 침침하던 눈앞이 깨끗해졌다. 인생은 희로애락, 흥망성쇠로 변한다더니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까. 겉보기에는 뻔한 이치들이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비로소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것임에도 이해하기 전에 경험해야 하니 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고, 이게 진리이고 실제의 삶인 성싶다.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것이 여유로워지고,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야속하지도 않고, 다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일이라 생각된다. 예전에 좋았던 눈이 나빠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것일까. 암튼 ‘제 눈에 안경’이라는 속담처럼, 우리는 각자의 편견이라는 안경을 쓴 채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간다.

지구촌 곳곳에서 대형 자연재해와 국경을 넘나드는 폭탄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져도 세상은 쉬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깨어 있는 세상도, 잠든 세상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숨을 내뱉는 한 반복되는 삶이다. 씨줄 날줄로 얽힌 세상, 삶의 무게는 오직 오늘이라는 시간만큼만 짊어지면 된다. 닥쳐올지 모를 불안 대신 지금 눈앞의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면 되지만 울타리 안의 인연에 얽혀 욕망의 크기를 잰다. 누구나 그에 자유롭지 못하다.

한발 더 나아가거나 한 발 더 물러선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마음과 달리 그러하지 못한다. 범부의 삶이다. 어느 게 맞나? 답은 없다. 늘 그렇고 그렇다. 그러면서 흐른다. 비가 내린다. 비가 갠다. 숨을 쉰다. 바람을 타고 걷는다. 거창한 생각이나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되는 거지만 부질없는 것들에 너무 시선을 흩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 안경을 끼고 책을 본다.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심신은 보이지 않는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행가로서 그냥 오래된 책을 읽는다. ‘33일, 기차 타고 파리에서 인천까지’ 즉《내추럴 트래블러(Natural Traveler)》는 계속해서 가슴에 머물러 있다. 역사, 문화를 떠나 필자가 가보았던 곳이든 안가 본 곳이든 ‘취중진담’처럼 인생 여정을 일깨워주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내리막인데 그걸 잊고 산다. 이 책이 말하는 것 중에 “죽는 것과 사는 것은 차부두어(死和活是差不多)”이고 “떠나지 않고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이나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한 번뿐인 과객 길에서 잠시 어리둥절 멈춰 서 있는 상태. 그러니 숨 쉴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엔 사람답게 사유하고 고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 게다.

‘늙은 천리마가 구렁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 리에 있다’고 했듯 마음이 먼저 죽으면 안 되며, 늙지 않으려는 말(馬)처럼 숨을 고르다 보면 아직 만날 세계와 갈망이 퇴장하지 않을 거다. 세상살이 어떻든 부질없는 것들은 흘려보내고, 지금의 시간 속에서 노화와 신체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지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대하며, 이 순간을 붙들고 열정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