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 컵 별자리 신화<下>
북두칠성에서부터 아크투루스(Arcturus, 목동자리 a별)를 거쳐 스피카로 내려오는 봄철의 대곡선은 봄의 별자리를 찾는 데는 가장 좋은 길잡이다. 까마귀자리와 무관하게 술잔자리를 찾는 방법으로 사자자리의 뒷부분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사자의 둔부에 해당하는 d별과 e별을 이어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컵자리(Crater)는 바다뱀자리에 인접한 작은 별자리이다. ‘술잔자리’라고도 한다.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남쪽하늘에 어렴풋이 떠 있는 술잔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컵자리를 보며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술잔’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각설하고, 흥미로운 건 이 ‘바다뱀자리’가 그대로 남방 주작 별자리의 나머지 별들과 겹친다는 것이다. 류수(柳宿), 성수(星宿), 장수(張宿) 각각 주작의 부리와 목, 모이주머니에 해당하는 별들이다. 나머지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도 바다뱀자리 바로 옆에 면해 있는 ‘컵자리’와 ‘까마귀자리’에 해당하니, 겨울 별자리가 모두 한 큐에 꿰어지는 셈이다.
바다뱀자리는 현대의 88개 별자리 중 매우 크고 가장 긴 별자리이다. 바다뱀자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큰물뱀자리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별자리는 α별 알파르드가 2등성일 정도로 어두운 별로 이루어져있다. 머리는 게자리 밑에 있으며 몸통은 사자자리, 육분의자리, 컵자리, 까마귀자리, 처녀자리이며 꼬리부분은 천칭자리까지 뻗어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12모험 중 하나로서 레느네의 뱀이다. 이 뱀은 머리가 9개었는데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가 합동하여 뱀을 물리쳤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을 본 헤라 여신은 거대한 괴물 게를 보내지만 도착하자마자 헤라클레스에게 밟혀 죽게 된다. 안타깝게 여긴 헤라여신은 히드라와 게를 함께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바다뱀자리외 주작)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이들 별자리 모두에 ‘향연’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류수, 성수, 장수는 정확히 남방 주작의 소화기관에 해당한다.(바다뱀자리로도 마찬가지로 뱀의 머리에서 몸통에 이르는 소화기에 속한다.) 이들의 점성학적인 의미는, 모두 ‘제례와 음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컵자리와 까마귀자리 역시 ‘만찬’과 ‘음식’을 상징하는 별자리들이다. ‘컵자리’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술잔이다. 그리고 ‘까마귀자리’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 먹느라 아폴론의 심부름을 잊은 대~단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왜 이들 모두는 향연 혹은 음식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동서의 점성술사들은 겨울 막바지의 이들 별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이러한 신화속의 술잔자리 별의 이야기도 술의 발명은 하늘임을 암시한다.
(컵자리)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1580년(선조 13)에 어느 도인과 송강의 술자리에서 나오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현 한 자락이 나오는데 그 또한 하늘이 술을 만든 한 증거이기도 하다. 남자는 술잔을 들어 밤하늘에 걸린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북두칠성 술잔입니다.” 남자가 송강 어른에게 술잔을 건네더니 이번에는 술병을 들고 바다 쪽으로 쑥 내 밀더니 말했다. ‘푸른 바다 술, 창해수(滄海水)올시다.’ 남자가 송강 어른에게 술을 따랐다. 송강 어른이 잔을 받아 술잔을 죽 들이켰다. ‘북두성(北斗星)을 기울여 창해수(滄海水)를 부어 내어 저 먹고 날 먹이거늘 서너 잔을 기울이니’라고 읊는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꿈에 신선이 나타나 나에게 이르는 말이
정철, 그대를 내가 모르겠는가?
그대는 하늘나라에서 살았던 신선이라.
황정경 한 글자를 어찌 잘못 읽어
인간 세상에 귀양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
잠깐만 가지 마오. 이 술 한 번 먹어 보오.
북두칠성을 술잔으로 삼아 기울여서 창해수를 술로 삼아 부어 내어,
저가 먹고 나에게 먹이거늘, 서너 잔 기울이니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양쪽 겨드랑이를 추켜드니
높고 높은 웬만하면 날 것 같은 기분이로다.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누어
모든 백성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그때 다시 만나 또 한 잔을 하자꾸나.
이 말이 끝나자 신선이 학을 타고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니,
그 공중에서 들려오는 옥피리 소리가 어제인지 그제인지 모르게 아련히 들려오네.
나도 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르니 그 바다 끝을 어찌 알겠는가?
밝은 달빛이 온 산과 촌락, 이 세상에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술 국자 북두칠성)
이처럼 동서양을 불문하고 별자리이야기에서는 모두 컵자리가 나온다. 이것은 하늘에는 ‘주성(酒星)’이 있고 이와 짝을 맞추는데 술잔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컵자리를 위치시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별자리 이야기는 인간사의 반영이기 때문에 한 쌍을 이룬다. ‘북두칠성’을 술국자로 인식한 시인들의 혜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 두(斗)는 술을 푸는 국자를 그린 상형문자이다. <설문해자>에는 ‘두(斗)’는 열 되의 용량으로 자루가 달린 것을 상형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속설에는 ‘사람(人)’이 ‘십(十)’을 잡은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긴 자루에 국자 모양이 달린 것이다. 술을 푸는 용기로 제격이다. ‘말 두(斗)’는 곡식이나 물을 퍼는 국자 모양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글자이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뜻은 ‘북(北)쪽에 있는 국자(斗) 모양의 일곱(七)개 별(星)’이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