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유상우의 에세이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전주의 막걸리집반잔 술에 눈물 나고 한잔 술에 웃음난다고 했던가.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키면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술상을 받는 기분은 흡족하고 술맛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주를 벗어나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전주 특유의 이런 막걸리 집은 오랫동안 이 지역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전주를 방문한 외지인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학교가 밀집해 있던 동문사거리를 중심으로 경원집, 신후문집, 한성집, 세종집, 풍남집 등은 막걸리의 전성시대를 풍미했던 술집들로 아직도 이 지역 주당들에게 추억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막걸리는 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80년 초부터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 시기 홍지 근처에 생긴 생맥주집 ‘활주로’는 맥주의 시대를 알리는 전주곡인 셈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막걸리는 소주와 맥주로 급속하게 대체 되었으며 80년대 말부터 맥주에 출고량이 역전되기 시작하여 현재 술 소비량의 5퍼센트를 간신히 넘고 있다. 농촌을 위주로 소비되었던 막걸리는 이제 논과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음료수로 보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전주는 값에 비해 푸짐한 안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막걸리 집이 현대식 주점들과 차별화에 성공하여 도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러한 막걸리집들이 거리를 이룬 곳이 있으니, 삼천동이나 서신동 막걸리 골목이다.

전주한옥마을의 융성과 함께 막걸리 집들도 번성을 누렸으나 최근에는 대다수의 막걸리집들이 불황을 겪고 있다.

불황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먼저 예전처럼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집이 많아지다 보니 토박이들은 그 가격과 서비스에 더욱 외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십 가지의 반찬이 전주막걸리골목을 번성케 했으나 오히려 그 많은 가짓수가 지금은 부담스럽게 작용하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획일화된 막걸리에 상다리 부러지는 안주 외에 더 이상의 특별한 콘텐츠가 없다.

작은 양조장에서 나오는 막걸리 혹은 작은 양조장을 기반으로 하는 투어프로그램, 누룩, 마스크팩, 가양주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전무했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맥주

1960년대 신중현은 이미자 등 전통가요 일색의 한국음악사에 또 다른 큰 획을 긋는다.

미 8군을 근거지로 시작된 신중현의 음악은 김추자, 장현, 펄시스터즈, 김정미 등 신중현 사단을 만들었으며, 한국 음악에서 새로운 돌풍의 진원지가 되었다.

나훈아, 남진 등의 음악에서 소외된 젊은 층은 이 새로운 음악에 열광하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엘비스프레슬리에 이어서 60년대 초반, 영국 리버풀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젊은 세대를 뒤흔들고 난 이후였다.

이 가운데 나는 김정미의 음악을 지금도 좋아한다.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불리는 그녀의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허스키한데 맥주로 이야기하면 굉장히 실험적인 스타우트의 느낌이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김정미의 음악을 최근의 가수 김윤아에게서도 느낀다. 물론 김윤아 노래 또한 무척 좋아한다.

이후 김창완 밴드의 음악과 80년대의 조용필 그리고 80년대 후반의 이승철과 90년의 서태지를 들으며 20대를 보냈다.

 

이처럼 대중음악이 변하는 사이 맥주는 얼마나 변했을까? 에일맥주가 대세였던 1960년대 우리 맥주의 스타일은 미군 납품으로 라거 스타일로 변한다. 주한미군들은 클럽 혹은 술집에서 익숙했던 라거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즐겼을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신중현의 등장은 지금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라거맥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미국에 의해서 보급되기 시작한 한국의 락과 맥주 그리고 수제맥주 바람이 거센 2017년 한국의 수제맥주 시장.

한국의 수제맥주 또한 미국의 크래프트맥주 붐 안에 있는 주변문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우리의 락이 미 8군이라는 창구에서 미국의 주변문화로 시작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으로 이제는 한류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신중현에서 현재의 JYP, SM 등의 발전은 이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오히려 세계의 대중문화를 리드하는 위치에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크래프트맥주가 지금의 한류를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까?

 

술은 농업이며 문화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작년에 했던 사업이 망하며 나는 삶의 속도와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일이 많아졌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동창들을 한 달에 몇 번씩 만난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익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삶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주 2~3회 전주천변을 쉬이 달리거나 걷는다. 그 한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지난 삶을 복기하며, 전주천변의 작은 생물들을 살핀다.

이렇게나 내 주변에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았나.

 

전주의 막걸리와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는 주종이 완전히 다르지만 한 가지 같은 것이 있다.

바로 농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전주의 막걸리는 수입산 쌀로 만든다. 대부분의 수제맥주 또한 수입산 맥아를 사용하여 맥주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문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이 얕거나 없다.

막걸리와 맥주의 천년대계를 세운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한류를 만든 것은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렸던 80년 광주와 87년 6월 항쟁 그리고 끊임없는 우리 민족의 힘과 염원이 있어서이다. 그러한 자유로운 분방함이 새로운 파괴력을 가진 문화를 잉태했다.

저 도저하게 거쳐 왔던 70년대 장발단속과 금지곡들 그리고 80년대 조용필과 대중음악이 일군 한국화 된 음악들. 90년대 서태지를 거쳐 그것이 폭발했던 것이다.

 

좋은 음악과 술은 그래서 시대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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