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시계~!

김 여사의 술 이야기

 

네·모·난·시계~!

 

 

한 10여 년 전쯤?

남편의 지인들과 부부동반 대만여행을 가게 되었죠. 그닥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지만 거절하기도 그랬어요.

사실,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형편이 몹시 좋지 않았는데, 거침없이 면세점을 쇼핑하는 동행들 틈에서 저는 점점 더 소심해지고 자꾸자꾸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평소 무심히 보아 넘기던 원숭인지 고릴라인지 달린 헝겊가방이 꽤 비싼 명품(?)이란 것도 그때 알았죠. 30% 세일이라는데도 전 빈손으로 면세점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돌아오는 날 들른 대만의 면세점에서 이 이야기의 발단이 시작된 겁니다.

 

아이들 선물을 사지 못해 뭐라도 하나 사긴 사야겠는데 그나마 그 원숭이 달린 가방이 가장 저렴했거든요. 그런데 인천공항에선 30% 세일하던 그 가방이 대만은 정가인 거에요.

인천공항에서 만지작거리다 결국 단념하고 돌아섰던 똑같은 가방을 30%나 더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분해 속만 부글거리고 있는데 옆에선 “여보옹~~” 하고 부르기만 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척척 계산해 주는 남의 남자들 등판이 부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들과는 정반대로, 옆에서 슬금슬금 제 눈치만 살피는 남편이 새삼 미워졌어요. 상황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었거든요.

억울해 미칠 지경으로 30% 더 준 가방 두 개를 들고 나오는데 우연히 시계 하나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쁜 체인으로 이어진 팔찌형의 네모난 시계였는데, 장신구나 보석에 별 관심 없던 제 맘에 그렇게 쏘옥 들다니요.

 

남편도 제가 맘에 들어 하는 걸 눈치 챘는지 마치 선심 쓰듯 얼른 사라고 했지만, 언감생심 100만 원이나 하더군요.

돈 한 푼 없으면서 100만 원짜리 시계를 선뜻 사라는 남편이 너무나 한심해서 “돈은 누가 낼 건데?” 하며 지청구를 놓고 나오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던 거죠~^^

눈에 삼삼한 그 시계를 잊지 못하고 있던 얼마 후 남편은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고, 저는 남편에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네모난 시계를 사다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모처럼의 부탁이어서 그랬는지 잊지 않고 사왔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 일?

그냥 가죽 줄에 달린 아주 평범한 네모 시계였어요. 제가 대만에서 그렇게 맘에 들어 하는 걸 옆에서 다 보았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 이게 아니란 말은 차마 못 하고 말았죠. 그리고 그 다음 해외출장 때, 대만 면세점에서 제가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그 시계를 상기하기 바라며 또 부탁했어요.

 

네모난 시계의 퍼레이드가 시작된 건 그 때부터였습니다. 아빠가 네모난 시계를 사올 때마다 딸아이는 웃어댔고 네모난 시계가 5개를 넘어가자 저는 더 이상 미련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올 초 해외출장 때 카톡을 주고받다가 “내 선물은 샀어?” 라고 장난삼아 한 마디 던지곤 잊었는데 돌아온 남편이 내놓은 것은 또다시 네모난 시계였습니다….

면세점엔 동그란 시계밖에 없어서 네모난 걸 찾아 헤매다 어렵사리 구해온 거라면서… 의·기·양·양·하게요… T.T.

그날 밤 전… 평소 한 병이면 족하던 막걸리를 두 병 마셔 제꼈습니다~! 아! 한없는 무심함으로 술을 부르는, 남자여… 그대의 이름은 남편….

 

도로교통공단 방송관리처장 김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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