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1)
연재(連載)를 시작하며
어느 지방 각설이타령에 이런 구절이 있다. “… 밥은 바빠서 못 먹겠고, 죽(粥)은 죽어도 못 먹겠고, 술만 수울술 넘어 간다….” 술이란 호칭이 이 타령에서처럼 목구멍으로 술술 잘 넘어간다 하여 생긴 이름일까? 심지어는 봄날 ‘소쩍소쩍’ 소쩍새의 슬픈 울음소리가 주당들의 귀에는 소주잔 비우는 ‘훌쩍훌쩍’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주당들에게 ‘좌르르 톰방톰방’, 시름을 잊게 하는 향기로운 술 거르는 소리보다 반가운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술꾼의 입담이지만 그 입에 술보다 더 잘 넘어가는 음식이나 음료가 있을 수 없음을 빗댄 속담이다. 그렇지만 이와는 반전으로 ‘맥주는 맥 풀려서 못 마시겠고, 양주는 양 때문에 못 마시겠고, 소주는 속이 아파 못 마시겠네’라는 푸념도 전해지고 있다. 이럴 경우 ‘제 술에 제 술잔’이라는 알레고리는 술맛 나게 한다.
그래서 이번호부터는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술잔으로서 정부((情婦)나 숨겨둔 연인의 유방을 본뜬 ‘수밀도잔’에 대해 연재하려고 한다. 물론 유방에 대한 미학적 접근 및 예술성도 함께 전개시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
중세의 신학자로 ‘스콜라 철학의 왕’, ‘천사박사’로 불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조물주가 오랜 고심 끝에 만들었다고 한다. 아퀴나스는 식물과 인간이 모두 곧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식물은 거꾸로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식물은 동물로 치면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가 땅속 깊숙이 들어가 있고, 동물의 팔다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위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사람이 사는 세상과 똑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인식하였다. 머리는 이 세상의 위, 곧 하늘을 향해 있고, 하체는 아래, 곧 땅을 향해 있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은 인간과 식물의 중간 상태로 머리와 배설기관이 평행을 이룬다. 이런 특징을 통해 아퀴나스는 인류가 동물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머리 위에는 신의 소리와 천국의 숨결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의 발아래에는 마귀의 소굴로 지옥의 신음소리 만이 존재할 뿐이다. 땅에서 기어 다니던 생활을 끝내고 몸을 일으켜 두 어깨 위로 머리를 치켜든 순간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를 끝내고 신학 또는 문화적 진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이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성적 상징 기관이 ‘볼기(Buttocks)’에서 ‘유방(乳房, Breast)’으로 옮겨졌다. 즉 인간의 조상이라는 유인원(類人猿)의 경우 성적 상징으로 양측의 볼기가 뒤에서 오는 수컷을 유인하기 위해서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앞쪽의 유방 쪽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여성 유방의 대부분이 지방 조직과 유선(乳腺) 조직으로 구성되며 모유를 분비하는 한편 ‘유두(乳頭)’와 ‘유륜(乳輪)’에는 성감대가 있는데, 이것은 사람에서만 나타나며 다른 동물에는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유방’을 가리고 이를 보이는데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한때는 여성의 미를 유방으로 결정하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때부터 여성들은 아름다운 유방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유방(Breast)이란 의학적 관점에서 젖꼭지를 중심으로 하여 볼록하게 살이 올라온 부분을 말하는데 ‘젖’이라고도 한다. 가슴을 중심으로 하여 양쪽에 대칭으로 한 쌍이 있고 젖샘이 발달하여 모유수유를 하는 기관이다. 유방은 젖샘과 지방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동기에는 젖꼭지만 있지만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성호르몬의 활동으로 볼록하게 유방의 형태를 갖추며 커진다.
남자에게도 여성의 가슴만큼 성적 매력을 잘 나타내는 신체 부위도 없다. 2011년 프랑스의 한 연구소가 프랑스, 영국, 브라질, 스페인,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총 7개국의 남녀를 대상으로 매력적인 여성을 볼 때 시선이 주로 어느 곳에 머무르는지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가슴을 주로 쳐다본 남성은 여성보다 37%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여성은 남성보다 27%나 많이 결혼반지를 봤다고 한다.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여성은 이 여성이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자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는 말이다. “가슴에 입술을 접촉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세계를 구별하는 행위 중 하나다”고 성의학자 킨제이는 말했다. 여성의 가슴에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는 인간의 행동은 동물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차원적 성애행동인 것이다.
여성 인체 중 가장 아름다운 유방으로 술잔을 만든 사건이 신화와 인간세계에 존재한다.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왕비의 유방 모형을 술잔으로 빚어 남성들을 뇌쇄(惱殺) 시킨 사건이 역사상 알려진 것이 3건이 있다. 이름하여 바로 ‘세계 3대 수밀도형 술잔’이라고 명칭 하였다. 그것은 미모로 트로이의 전쟁을 야기시킨 주범 헬레네(Helene), 이집트의 섹스 심벌인 클레오파트라(Cleopatra), 그리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이다. 그녀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유방을 본 떠 제작한 ‘수밀도잔(水蜜桃盞)’이 그것들이다.
이들을 일컬어 술잔을 자기 자신의 에로틱(erotic)한 원초적 유방을 본 떠 제조하여 사용한 ‘세계 3대 수밀도형 술잔’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 심벌인 이 ‘유방형 술잔’은 우선적으로 사랑을 위해, 국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을 무기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든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한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여성들의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Attic black-figure mastos cup attributed to Psiax, ca. 520-510 BCE)
고대로부터 유방은 상징적인 의미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유방을 다산과 풍요의 상징뿐만 아니라, 신앙적 숭배 물로 받아들였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육체의 쾌락을 죄악시했던 시기에는 모든 악의 근본이 여성의 유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서 여성의 유방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사춘기에 들어서면 유방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유를 분비하는 유선 조직이 발달하고 그 주위의 지방 조직도 빠른 속도로 자란다. 유방의 주된 기능은 유즙을 생산하는 것으로, 임신을 하면 출산 후 수유를 준비하기 위해 유방이 더욱 발달한다. 이후 수유가 끝나면 유방은 다시 작아진다. 이와 같이 여성의 유방은 유즙을 생성하여 수유하기 위해 구조적, 기능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둘째, 가슴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적인 의미를 가진다. 특히 여성에게 유방은 체형을 이루고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할 뿐 아니라, 옷매무새를 결정짓는 축이 되기도 한다.
남성에게 여성의 가슴만큼 애틋하게 성적 감흥을 주는 것도 없다. 흥분한 상태의 어여쁜 유두와 잘 익은 멜론과도 같은 가슴이 남성들에게 절대적 성적만족감을 준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도 같은 생각이다. 남성이 가슴에 대한 키스를 할 때 대부분의 여성은 황홀감을 느끼게 된다. 여성의 가슴은 신이 내려준 선물인 것이다.
Portrait of Hebe
가슴은 여성들의 신체 중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여기는 한 부위로 아기에게는 생명의 정수를 물려주는 곳이요, 남편에게는 애정을 나누어 주는 곳이며, 여성 본인에게는 자신의 미적 가치를 표현한 곳이다. 또한 가슴은 제2의 성기라고 할 만큼 여성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의미와 자존심이 표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의 인류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가슴의 형태가 성적 신호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은 남자를 유혹하는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이 발달하였다는 관점을 받쳐주었다. 그러니까 모리스는 여성의 가슴을 ‘제2의 엉덩이’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모리스의 주장에 반박하는 가설도 있다. 모리스의 가설에는 남성 중심의 관점이 반영되었다. 아기가 편하게 수유를 할 수 있도록 가슴의 형태가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최근에 후자의 가설이 주목받고 있으나 모리스는 여성의 가슴이 성적 신호라는 주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이 양육 기능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성을 수단으로 하여 유혹을 한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여성들의 아름다움의 현신은 바로 유혹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젖가슴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최대의 무기중의 하나이다. 여자의 가슴에 담긴 치명적 유혹에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그 젖무덤에 묻혀 세상을 등졌는지는 모른다. 어머님의 가슴에 뭇고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편안함과 진정성을 안겨 안도의 눈물로 변한다. 아름다움의 현시는 뭇 남성들의 염이기도 하다. 화가들은 한사코 여성들의 유방을 그리려고 노력할까, 이보다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적회색 유방형 술잔)
(Greek Wine Cup 밑바닥 그림) (적회식 술잔 그리스, 기원전 480년경 아테네 제작)
위 그림들은 수밀도형 술잔들인데, 술잔 내부에 나신의 남자와 여자가 그려져 있어서 주연에 참가한 손님이 포도주 잔을 비우고 나면 유방형 술잔 밑바닥에 이 선정적인 장면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향연에 참가한 고급 기녀 헤타이라(hetaera)들과 함께 그림속의 주인공이 되었을 수도 있다.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