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에세이
동전의 양면
불꿈을 꾸다
새해가 시작되고 꿈을 꾸었다.
집에 큰 불이 났다. 아무리 끄려고 해도 불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 꿈에서 깨었다.
새해 친구들과 신년회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절친한 친구에게 내 꿈을 단돈 천원에 팔았다. 나도 내 꿈이 좋은 꿈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사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마냥 좋은 일만은 없다는 것이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다. 좋은 것 이면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불이 일어나듯이 가세가 좋아지거나 회사가 좋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 일상이 늘 평범하고 평온했으면 한다.
내 꿈을 사간 친구도 평범하게 밥 한끼, 술 한 잔하며 올 한해 내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의 큰 성공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공하면 같이 술 한잔 기울이기도 힘들지 않은가?
비트코인 같은 투자수익을 올리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친구가 사간 천원어치의 꿈은 10만원어치로 돌아오면 좋겠다. 아니면 말고.
스물과 함께 꽃핀 한류(韓流)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들고 가요계에 등장했던 1992년, 나는 막 스물이 된 대학 새내기였다.
때는 노태우정권 말기였으며, 민주정부 수립의 열망이 무척 큰 한 해였다. 우리는 ‘난 알아요’ 보다 ‘민중가요’를 더 많이 불렀지만 노래방에 가면 서태지의 음악을 열창하기도 했다.
당시 멜로디와 서정성 짙은 트로트 혹은 발라드 음악이 주류였던 한국가요의 틀에서 벗어난 서태지는 젊음을 열광케하는 자유스러움이 있었다. 그해 어느 프로그램에서인가 처음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가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인상 깊었다. 그 방송이 나가고 서태지는 한국가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우리가 서태지의 신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가 던진 사회에 대한 메시지였다. 학교교육의 문제점 혹은 분단 등의 내용을 음악에 담아내었다.
1993년 이후 문민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서해 훼리호 참사,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허약하고 거짓되었나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기성세대가 만든 고학력의 세태 속에서 고졸 중퇴의 서태지는 대학에 갇힌 우리들에게 참신했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 세대는 80년대를 거치며 극심한 가난을 겪지 않았고, 87년 6월 항쟁의 영향으로 학교도 예전처럼 병영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밤별이 뜬 야간학습을 마친 늦저녁이면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고뇌를 했다. 이것이 나와 나라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친구들과 학력고사를 앞두고 백일주를 마시며 괴로워했다.
우리는 20년의 생애동안 서태지의 음악을 잘 흡수할 수 있는 귀명창이 되었던 것이다. 마치 70년대와 80년대의 젊은 청춘들이 군부독재시절의 암울함을 통키타와 청바지, 장발, 생맥주, 미니스커트로 견뎌낸 것처럼.
서태지는 은퇴했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에 의해 90년대 후반부터 한류가 세계 각지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한류는 대중음악과 드라마 등에서 출발을 했지만 갈수록 문화전반으로 확산되었다.
한류(寒流)가 흐르는 전통주
한국의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발전하여 한류가 되었지만 전통주는 아직도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 가중되는 경제난은 전통주업계를 더욱 벼랑으로 몰고 있다. 마치 사드배치 이후 중국인들이 빠져나간 것처럼 우리 전통주 시장은 황량하기 그지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제도와 자본과 기술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혁신의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럴수록 전통주의 앞날은 암담하게 보인다.
그러나 꼭 전통주만이 힘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 전반이 탄력을 잃었으며,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젊은 세대들의 어깨가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 더 굽어버렸다.
현재 전통주업계는 전통주업체가 근간으로 자리한 것이 아니라 전통주관련 교육기관이나 기획사 혹은 관련정부기관만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전통주산업을 이끌어 가야할 전통주 업체가 그 중심에 서지 못한 나약함으로 생긴 문제다. 환경이나 다른 이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진정 관이나 유통업체나 다른 기관이 아닌 전통주업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만나야할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다.
어려움은 바로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 안에 새로운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 글쓴이 유상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