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가 마난 사람③
윤유경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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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만남을 이어주는 술과 음식이 있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진심 어린 만남과 소통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운치 있는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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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윤유경 이사는 몇 년 전까지 대기업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였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순간, 그녀는 문득 퇴직한 이후의 자신을 그려봤다. 30대 초반, 회사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이지만 새로운 일을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지만 음식 관련 일이 끌렸던 그녀는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슬로푸드 운동’을 만나게 됐다. 주방보다 농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녀의 관심은 밥상에서 땅으로 옮겨갔다.
그녀가 말하는 슬로푸드는 거창한 음식이 아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과 시간을 들여 오랜 기간 묵힌 된장과 고추장, 김치, 젓갈, 발효과정을 거친 술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고유의 음식이다. 제철에 키워낸 품질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 ‘자연의 시간에 순응하며 자란 친환경 먹거리’가 슬로푸드다.
슬로푸드에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재료를 생산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방식으로 정당한 대가가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슬로푸드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변화시킨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그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공대 언니’ 윤 이사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요리와 음식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 고유의 맛을 보존하는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고 한다.
윤 이사는 전통주에서 슬로푸드의 가치와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술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 그 무엇보다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술의 종류와 풍미도 다양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슬로푸드의 하나로 관심을 가지게 된 전통주
윤 이사는 몇 년 전만해도 시중에서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전통주를 맛보기 위해 택배로 주문도 해봤지만, 전통주는 여전히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한국명주학교’ 과정을 다니면서 여러 양조장을 둘러보고, 직접 전통주도 담그기 시작했다. 윤 이사는 본인이 직접 빚은 청주가 가장 맛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술 빚기 좋은 겨울철에 우리 밀로 만든 누룩과 농부에게 받은 신선한 쌀을 이용해 직접 빚은 술은 사실 웬만해선 실패할 일이 없다. 또 주변의 지인들과 나눠먹는 술 맛은 그 어느 명주보다 그윽하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통주 가운데 좋아하는 술은 죽력고를 꼽았다.
윤 이사는 양조장에서 만난 송명섭 명인이 죽력고를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걸 봤다. 그 에너지가 죽력고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쌀을 구매해서 술을 빚으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니 원가를 계산하게 된다고 쌀농사까지 직접 짓는 송명섭 명인의 장인정신과 좀 더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을 알기에 죽력고는 윤 이사에게 단순한 술 이상의 특별한 술이 되었다.
규모가 큰 주류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만든 술이 아닌, 우리 쌀과 직접 만든 누룩으로 빚은 전통주에서 만든 이의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맛으로 감동받을 수 있다면, 우리 술의 오리지널리티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윤 이사는 믿는다.
윤 이사는 쳇바퀴 돌 듯 바쁘게 돌아가던 회사에서 커피 한 잔이 자신에게 특별한 만족감을 주는 것처럼 사람들과 기분 좋게 나누는 전통주 한잔에서 작은 사치와 같은 특별한 느낌을 느껴보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 / 막걸리학교 사무국장 문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