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의 술 이야기⑧

김 여사의 술 이야기⑧

어느 날 여고시절(2)

김경녀(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장)

여름방학까지는 약 한 달 남짓 남아 있었고….

“선생님, 저 하나(霞娜) 에요”라고 시작된 제 편지는 거의 매일 수학선생님의 책상 위에 정확히 배달되었습니다.

‘하나’라는 이름… 노을 하(霞)에 아리따울 나(娜).

못난 저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겸손치 못한 제 이름풀이가 싫어서 혼자 자전을 뒤져 가며 지어낸, 제가 그 당시 꼭 갖고 싶었던 다소 유치한 감정의 소산물이었죠~^^

스물도 안 된 열여덟 계집애였을 때조차 저는 이유 없이 겉늙어 아침 햇살보다는 저무는 노을을 좋아했었거든요.

떠오르는 태양처럼 뜨겁고 눈부시지 않아도 노을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女人이 되고 싶다고 혼자 간직하고 있던 이름이었는데, 제 생애 최초의 러브 레터에 주인공으로 데뷔시키게 될 줄 전들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어찌되었거나 내기는 시작되었고, 저는 교과서 대신 섭렵했던 소설과 참고서 대신 탐독했던 시집이란 시집을 하얗게 밤 밝혀 가며 이 잡듯 뒤졌습니다. 그리하여 찾아낸 온갖 미사여구를 무단 차용하여 이리저리 기워 엮은 그 러브 레터는 정성이 지극했던 만큼, 구구절절 사모하고 애타는 마음을 담아 제법 성숙한 냄새를 풍기며 제법 그럴 듯했다고 기억됩니다.

친구도 편지를 보내는 듯은 했으나, 서로 자신의 전략을 노출시키는 허점은 절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한 달….

어느 사이엔가 저는, 내기엔 아랑곳없이 러브 레터 쓰는 일 그 자체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아름다운 편지, 좀 더 그리움으로 물든 편지를 쓰는 일에 그야말로 열중하고 또 열중하며 매달렸습니다.

친구와 저는 먼저, 방학 전날은 친구의 표적이었던 선생님을 시험대 위에 올리기로 하였고,

수학선생님은 방학날 올리기로 잠정적인 합의를 보았습니다.

친구는 마지막 편지에서

“방학 전날 오후 5시 30분에 편집 반으로 찾아가겠노라” 썼다고 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편집 반으로 가서는 공연히 교정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오늘은 일찍들 가라”

“왜요?”

“피곤하잖냐… 내일 방학식 끝나고 일찍 와서들 교정봐라…”

“안돼요~ 밀린 게 얼마나 많다고요~”

4시… 4시 30분…

시침을 뚝 떼고 열심히 교정을 보는 체했지만, 전에 없이 그만 가라고 채근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웃음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서로 책상 밑으로 발을 쿡쿡 찔러대며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았지요.

5시….

“아, 그만들 가라니까!”

“알았어요.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우리는 편집 반을 나와선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5시 30분….

그런데, 막상 시간이 되니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야! 얼른 가봐… 5분 지났잖아”

“같이 가자”

“아이, 싫어~~~ 너 혼자 들어가…나중에 따라 들어갈게”

둘은 편집 반 문 앞에 가서까지 옥신각신했는데 친구가 결심을 했는지 따박따박 가더니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짐짓 놀라는 목소리로

“어머! 선생님 아직 안 가셨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능청에 더 놀란 사람은 선생님보다 저였습니다.

“어! 넌 왜 아직 안 갔니?”

“놓고 간 게 있어서 좀 찾으려고요…”

친구를 따라 엉거주춤 들어간 저는 가재미눈을 하곤 힐끔힐끔 훔쳐보았지만 어쩐지 처음 같이 초조하신 기색은 없어 보였습니다.

친구는 캐비닛까지 열고 수선을 떨며 한 5분쯤 보내더니 무슨 책인지 한 권을 꺼내들곤 찾았다며 나가자고 재촉했습니다.

“저희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런데, 인사를 하고 나오는 우리들의 뒤꼭지를 듣기 좋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잡아 당겼습니다.

“야! 임마, 둘 다 이리 와 앉아. 자식들이 장난은….”

친구와 저는 화들짝 서로 쳐다보며 산통이 깨졌음을 알아챘습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누구인지 알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워낙 달필이었던 친구의 글씨가 유죄였다는 것입니다. 제 깐엔 변조한다고 한 것이 별도움이 되지 못했는지 그래도 무엇인가 영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물증도 없는 심증만으로 애꿎은 선생님을 매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친구는 깨끗하게 실패를 인정했고, 우리 둘은 화단 앞 돌계단에 교복 주름치마를 퍼지르고 앉아 땅거미가 운동장 끝 은사시나무 그림자를 길게 잡아 늘일 때까지 웃고 또 웃으며 내일의 거사(?)는 꼭 성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수학선생님은 결코 제 글씨를 알지 못하실 것이므로….

그리고 드디어 방학인 다음 날,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두 공모자는 학교 앞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수학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네… xxx입니다”

“선생님, 저 하나에요”

“어? 그래, 네가 하나로구나~”

선생님은 몹시 반색을 하는 목소리였습니다.

…To be continued.

…Let me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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