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꽃비 되어 내리는 계절은 진짜 주당들에겐 축복의 계절이다. 날씨가 쌀쌀해져 술맛이 나기도 하지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각종 모임이 줄을 잇고 있어, 그만큼 술자리를 접할 수 있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공짜 술자리도 제법 생기는 것이 바로 연말이다. 새삼스레 연말이 가까워오니 몸조심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술은 어른들이 마시는 것이지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마시는 것이 아니니까 어른들이 알아서 잘 마시면 되는 것이다.
요즘 모 방송국이 내보내고 있는 ‘대물’이란 드라마에서 아버지 하봉도(임현식 분)는 검사가 된 아들 하도야(권상우 분)의 첫 출근길에 “검사는 절대 공짜 술과 공짜 밥을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즘 세태를 빗대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 잇속 없이 누가 돈 들여가며 술사고 밥 사겠는가. 공짜 술 그 이면에는 그 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공짜 술의 대가(大家)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방송인 김제동은 최근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세상을 바꾸는 1000개의 직업’이라는 강연회에서 “학교 앞 술집에 올F 성적표를 들고 가면 석 달간 술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관광레크리에이션과 관광영어 과목 교수님에게 가서 F를 달라고 했다”고 털어놔 화제가 되었다. 스스로 공짜 술의 달인(?)임을 과시한 것이다. 그래서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일까.
직장 내에선 일을 잘해 인기가 좋지만 술자리에선 분위기를 못 맞춰 그 인기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른바 술자리의 꼴불견들이다. 이를테면 술버릇이 나쁜 사람, 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람, 억지로 술을 권하는 사람, 술값을 안내는 사람, 술자리에서 속내를 비추어야 할지 안해야 할지 경계가 되는 사람 등이다. 직장인들이 술 마시는 이유 가운데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6%나 된다고 하니, 술자리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평소 귀하게 얻은 점수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주당들이 생각하는 술자리의 진짜 꼴불견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술자리가 파해 계산대로 가야 할 시점에 바로 옆에 있는 신발을 못 본 체하며 찾아 헤매는 동작을 취하고(심한 경우 묶었던 신발 끈을 푸는 경우도 있음), 어떤 이는 나가는 사람을 다시 붙잡고 전혀 심각하지 않은 얘기를 몰두해서 하기 시작하고, 또 어떤 이는 술자리가 파할 때쯤이면 이상하게 열변(熱辯)의 장광설(長廣舌)을 멈추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결국 ‘잘 나가는 놈’과 ‘성질 급한 놈’이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 일반 학설이다. 또 있다. 자기가 계산 안 할 때 비싼 양주나 안주를 시키는 사람도 있고, 카드를 집에 두고 왔다면서 지갑에 든 1000원짜리 몇 장 꺼내며 나이트 가자고 분위기 띄우는 사람도 술자리에선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익을 위해서 또는 청탁을 위해서 사는 상술(商酒?business를 위해)은 상대방이 가급적 비싼 술과 안주를 시키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고 친구끼리 또는 직장 동료끼리 가볍게 한 잔 마실 때는 가급적 저렴한 안주를 주문해야 술값 내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자주 온다는 것쯤은 공짜 술 먹기를 즐기는 주당들의 지혜다. 그리고 친구가 두 번 사면 나도 한 번 살 줄 알아야지 계속 얻어먹기만 하면 주당클럽에서 왕따 당하기 십상인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글줄이나 쓰는 문인 주당들이 자주 애용하는 인용구 중에 ‘酒神(Bacchus)은 海神(Neptune)보다 많은 사람들을 익사시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신나는 술자리라도 술잔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다면 인생 끝이다. 올 연말에는 적당히, 아주 적당히 마시자. 내년을 기약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