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完)
샴페인 포도주 잔
어떤 포도주를 막론하고 포도주 잔들 역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무척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졌다. 샴페인 포도주의 잔들도 마찬가지로 지난 450년 동안 시대의 흐름과 함께 또 지역 문화의 변천에 따라서 많은 변화를 거쳤다. 샴페인 포도주 잔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첫째 가늘고 기다란 플루트(Flute) 잔과 그 다음 두 번째는 움푹 들어간 접시 모양 또는 사발과 같은 쿠페(Coupe) 잔 그리고 세 번째는 술을 담는 사발이 튤립(Tulip) 모양을 한 잔이다.
첫째 가늘고 기다란 샴페인 ‘플루트(Flute) 잔’은 예전 고대 로마(Gallo Roman) 시대부터 그 유래를 가진 오래된 포도주 잔이다. <한 샴페인 잔의 장미꽃들(Roses in a Champagne Glass)>이라는 정물화 그림은 1883년에 유명한 인상파 화가 에드워드 마네(Edo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19세기 말에 파리에서 대체로 플루트 잔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 <플루트 잔>에는 노랑 장미와 붉은 장미 한 송이씩 담겨져 있다. 그림 안의 장미꽃들은 심한 병으로 힘들어하는 병든 마네(Manet)를 병문안 온 친구가 가져다 준 것이며 마네는 아픈 몸으로 서서 그리지를 못하고 앉아서 그렸다고 한다.
이 길쭉한 모양의 플루트는 샴페인의 거품이 가능한 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해 주며 거품이 위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구조이다. 또한 마실 때 손의 온도에 의해 차가운 샴페인이 미지근해 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한다. 비단 샴페인 뿐 아니라 거품이 포함되는 맥주도 플루트 모양의 잔에 따라 마시는 경우가 많다.
‘플루트 잔’의 특징은 샴페인 포도주의 대명사인 거품 방울들을 다른 폭이 넓은 잔들 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플루트 잔의 큰 장점은 잔이 가늘고 길기 때문에 바텐더(Bartender)들이 많은 잔들을 한 번에 나를 수 있다는 점이다. 샴페인 포도주 잔의 표면이 거칠지 않고 스무스(Smooth)하면 샴페인 거품 방울들이 아주 서서히 발생하며 떠오른다. 이 잔으로 샴페인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포도주 잔 안에 남아있던 거품 방울들이 입안에서 대기와 접촉을 하게 되어 폭발을 한다. 입안에서 짜릿 짜릿한 느낌을 주는 이것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플루트 잔의 아주 미미한 단점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잔의 폭이 아주 좁아 애주가들이 한 번에 포도주를 많이 들이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사발 모양으로 생긴 샴페인 ‘쿠페(Coupe, 잔이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얕은, 다리 달린 잔) 잔’은 많은 전설을 가져다 준 술잔이다.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이 쿠페 잔의 모양은 많은 여성의 왼편 유방을 모형으로 하여 제조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쿠페는 그리스 신화의 여인 헬레네의 가슴을 본떠서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관능적인 경험이라고 여겼고, 그러니 그 잔을 만드는 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공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수세기가 지난 후 회자에 오른 여성들은 우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당시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가 첫 번째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본뜬 쿠페를 만들도록 했고 그럼으로써 잔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트로이의 헬레네보다 그 방면에서 좀 더 복 받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잔은 루이 15세의 열렬한 애인으로 유명한 마담 드 퐁파두르(Madame de Pompadour)이며, 세 번째 잔은 나폴레옹 황제의 두 번째 부인 조제핀 드 보하르네(Josephine de Beauharnais)의 젖가슴이다.
그 외로 다수의 프랑스 귀족 부인들이 리스트 속에 있다. 그 외로 다수의 프랑스 귀족 부인들이 목록 속에 있다. 허나 이 여성들이 생존하여 있을 당시보다도 100년이나 앞선 1663년에 이미 영국에서 샴페인 포도주 잔으로 쿠프(Coupe)잔이 존재했던 것으로 봤을 때 이 전설들 대부분은 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이 여성들이 생존하여 있을 당시보다도 100년이나 앞선 1663년에 이미 영국에서 샴페인 포도주 잔으로 쿠페 잔이 존재했던 것으로 봤을 때 이 전설들 대부분은 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서 제왕에 오른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 또한 모엣 샹동(Moët et Chandon)과의 인연이 깊다. 나폴레옹의 샴페인 사랑은 모엣샹동의 사장인 레미 모에(Jean-Remy Moet)의 초대로 모엣샹동이 있는 샹파뉴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곳은 나폴레옹이 전장을 오갈 때 와인과 함께 종종 쉬어가는 장소가 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전처 조세핀도 1807년 이곳의 저택에 머물렀다. 같은 해 러시아 황제와 틸시트 조약(Treaty of Tilsit, 1807)을 맺은 나폴레옹이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와이너리를 찾은 이야기는 저택의 대리석 조각에 새겨져 있다.
19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Alexander II)는 러시아의 체제를 근대화하였으며, 재임기간 중 노예제도를 금지한 휴머니스트였다. 그의 재임기간 중 러시아 황실은 고급문화의 산실이었다. 러시아 황실은 프랑스 황실과도 인연이 있어 알렉산더 2세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함께 샴페인을 즐기곤 했다.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는 황제의 샴페인으로 이름이 높다. 그가 즐겨마시던 샴페인은 루이 로드레가의 퀴베(cuvee)였다. 러시아 황실은 루이 로드레가 문에 매년 황제를 위하여 가장 좋은 뀌베(cuvee)를 예약해 둘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1876년 어느 날 황제는 그가 마시는 샴페인이 외관 상 다른 귀족들이 마시는 샴페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그의 소믈리에(sommelier)에게 지적했다. 테이블 냅킨에 싸여 서빙 되는 와인 병이 겉으로 똑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는 1776년 이후 같은 패밀리가 경영하고 있는 샴폐인 명가이다. 7세대에 걸쳐 한 가문이 샴페인 하우스를 이어오고 있다. 가족 소유 샴페인 하우스는 글로벌 기업 소유의 샴페인 하우스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루이 로드레라는 이름은 와인애호가들에게, 특히 샴페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쁨의 이름이자 동경의 이름이다. 루이 로드레의 강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먼저, 한 가문이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1776년, 루이 로드레의 삼촌인 니콜라스 슈뢰더에 의해 설립된 루이 로드레 샴페인 하우스는 1883년 유망한 사업가였던 루이 로드레에게 상속되었고, 그는 기존의 7배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금주령 철폐와 함께 샴페인 포도주가 미국 상류사회에서도 유럽의 상류사회나 마찬가지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샴페인 포도주는 미국 상류사회의 한 척도가 되었다. 지금의 샴페인 포도주와는 달리 1930년대의 샴페인 포도주는 아주 단(Sweet)편이라서 쿠프(Coupe)잔에 따라 마시는 샴페인 포도주는 하나의 후식주로 인정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까지 결혼식이나 평범한 파티에서 샴페인 쿠프잔은 하나의 패션으로 되어버렸다. 허나 잔의 폭이 무척 넓은 쿠프잔은 대기와의 접촉이 무척 빨라 샴페인 포도주의 가장 기본 요소인 많은 양의 거품 방울들은 쉽게 사라져버린다. 또 하나 큰 단점은 플루트 잔보다 형성되는 거품 방울의 크기가 표면이 넓은 탓에 희미할 정도로 매우 작은 물거품(Mousse)같아 보이고 포도주의 향기도 적다. 샴페인 포도주 감정에서 거품 방울들이 작다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시음자가 어떠한 잔을 사용하였는가에도 많은 의문이 간다. 샴페인 쿠프잔의 가장 큰 장점은 애주가들에게 많은 양의 술을 한꺼번에 들이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찌감치 명성을 알리게 된 루이 로드레 샴페인은 이후 후손들에 의해 성공적인 경영을 이어왔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미국의 금주법 등 여러 난관을 겪으면서도 탁월한 사업 능력으로 의연하게 본연의 자리를 지켜왔고, 현재는 프레데릭 루조(Frederic Rouzaud)가 2006년부터 루이 로드레를 이끌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유명 샴페인 하우스들이 거대 기업에 합병된 것을 상기해볼 때, 오래도록 가족 경영 방식을 고수해온 루이 로드레의 소신과 철학은 단연 돋보인다.
에에 소믈리에(Sommelier)는 황제의 뀌베(Cuvée)를 위한 투명한 크리스탈(Cristal) 병을 만들어 다른 샴페인 병과 확실히 구별되도록 했는데, 이것이 황제의 전용 샴페인인 크리스탈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이 모양대로 크리스탈은 1세기 이상 러시아 황실에만 공급되었다. 2007 <포브스>지 선정 연예계 최고의 여성 갑부 오프라 윈프리 역시 크리스탈의 애호가이다. 자신의 50번째 생일날 오프라 윈프리 쇼의 방청객과 함께 크리스탈을 나눠 마셨다. 18세기부터 샴페인을 생산해 온 명가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사’는 샹파뉴 지역의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도만 사용하며, 루이 로드레만의 절묘한 블렌딩 기술이 돋보이는 ‘크리스탈’을 생산하고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금주령 철폐와 함께 샴페인 포도주가 미국 상류사회에서도 유럽의 상류사회나 마찬가지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샴페인 포도주는 미국 상류사회의 한 척도가 되었다. 지금의 샴페인 포도주와는 달리 1930년대의 샴페인 포도주는 아주 단(Sweet)편이라서 쿠페 잔에 따라 마시는 샴페인 포도주는 하나의 후식주로 인정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까지 결혼식이나 평범한 파티에서 샴페인 쿠페 잔은 하나의 패션(Fashion)으로 되어버렸다. 허나 잔의 폭이 무척 넓은 쿠프 잔은 대기와의 접촉이 무척 빨라 샴페인 포도주의 가장 기본 요소인 많은 양의 거품 방울들은 쉽게 사라져버린다. 또 하나 큰 단점은 플루트 잔보다 형성되는 거품 방울의 크기가 표면이 넓은 탓에 희미할 정도로 매우 작은 물거품(Mousse)같아 보이고 포도주의 향기도 적다. 샴페인 포도주 감정에서 거품 방울들이 작다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시음자가 어떠한 잔을 사용하였는 가에도 많은 의문이 간다. 샴페인 쿠프 잔의 가장 큰 장점은 애주가들에게 많은 양의 술을 한꺼번에 들이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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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이야기가 특별기고로 연재됩니다
2018년부터 연재해온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는 이번 호(24회)로 끝납니다.
2020년부터는 역시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로「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인간의 의식에서 ‘신화(myth)’와 ‘로고스(logos)’의 관계는 서로 반목하는 관계가 아니다. 다만 시대적인 기능을 할 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의 상징적 기능을 역사적, 시대적 변천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시작되는「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역시 주당들에게는 주옥같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