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술 담그기’ 펴낸 조호철씨

公職 15년간 술 서적만 4번째, 열정은 여전

그와 얘기를 나누면 바다 냄새가 난다. 그가 꼭 부산 출신이래서가 아니다. 질문 한 가지 툭 던지고 끝날 줄 모르는 답변을 듣다보면 여름철 시원한 바닷가에 앉아있는 듯하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는 탄산이 강한 막걸리 한 잔의 질감도 느껴진다. 수줍은 듯 겸손하지만 무모한 듯 고집스럽다. 한 눈에 그의 성격을 그렇게 파악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책 한 권을 펴냈다. ‘100가지 술 담그기’(그리고책). ‘3000원으로 담그는 우리집 명주라는 소제목도 달았다. 정말 여기 소개된 술들이 3000원이면 만들 수 있는 것들이냐고 묻자, 그냥 배시시 웃는다. 그러곤 3900원까지는 넓은 아량으로 봐주길 바란다는 말을 살짝 흘렸다. 원고와 사진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했다. “6개월쯤 됐다고 했다. 기가 찼다. 물론, 허투루 만든 책이 아님을 알기에 더 기가 찼다.

봄비 내리던 날 그를 만났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 조호철(趙晧哲43). 대학에서의 전공은 화학. 1996318일 국세청 기술연구소(현 주류면허지원센터)에 입사하면서 술과 첫 인연을 맺었다. 15년 넘은 세월 동안 술을 접했으니 이젠 지겨울 때도 됐다. 허나, 그의 열정은 여전히 처음의 것 그대로다. 책 출간했으니 얼굴 한 번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제게 그런 영광을이라며 겸손해 하면서도, 막상 만나니 40분간 신간(新刊) 브리핑을 하던 그다.

이번 신간은 쉽게 말하면 막걸리, 약주, 와인 등의 레시피 북쯤으로 소개할 수 있다. 여러 술의 제조법을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막걸리 11가지와 약주 16가지, 와인 20가지, 담금술 29가지, 칵테일 15가지 외에도 각종 증류주와 맥주의 레시피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샴페인을 만들고 싶니? 그럼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드는 방법 그대로 네 집에서도 만들 수 있게끔 해줄게하며 참여를 이끌어내는 식이다.

기존의 양조 관련 서적들은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양조장들에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이 책은 철저히 초보자에 맞춘 겁니다. 소개한 대로 만들다보면 어느새 저절로 양조 원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했죠.”

조씨는 읽고 따라하다 보면 어느 새 좀 더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라며 그때 가서 시중에 나와 있는 양조 관련 서적을 사 보면 된다고 했다.

우리술을 어려워하는 생초보에겐 어떤 레시피가 어울릴 지 물었다.

아무래도 와인 쪽이 쉬울 거예요. 일단 효모만 있으면 되니까요. 이 책에 보면 포도주스로 만들 수 있는 와인, 복숭아 통조림으로 만드는 스파클링와인 등이 소개돼 있어요.”

책에 소개된 재료들이나 양조 도구들은 모두 대형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방앗간 찾기 쉽지 않은 요즘, 그 대용(代用)으로 믹서기를 사용한다든지 항아리 대신 산소 차단 밀폐용기를 사용하는 식이다.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면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식을 차용한다고 해서 전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조씨는 전통과 현대의 중간에서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였다. 그런 까닭에 그 스스로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했다. 우리술을 빚는다고 하면, 전통방법을 고수하는 쪽과 현대적인 시설로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쪽으로 나눠지는데, 자신은 그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에 맞게 개량된 방법으로 우리술을 만드는 것이 어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게다 싶었다. 그 역시 곳곳의 양조장에서 이 책을 많이 응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조씨는 책 출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세 권의 책을 펴냈다. 20041우리술 빚기’(넥서스)나만의 맥주 만들기’(넥서스) 두 편을 동시에 냈고, 다음 해 9와인 가이드 & 홈메이드 와인’(길벗)을 연속으로 내놨다. 이 세 권의 책엔 사연이 있다. 원래 이 책들은 하나로 묶어 나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판사 측에서 주종(酒種)별로 책을 나누길 원했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모두 그가 초창기에 술을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들이어서, 이제 막 술에 입문한 사람들의 지침서로도 그만이다.

4시간가량 얘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공무원 생활을 막 시작할 즈음의 그와 지금의 그를 생각해봤다. 조씨는 입사하고 나서 얼마 후 책상에 앉아 업무만 보는 게 싫었고, 공무원이면 오히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집중적으로 술만 팠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지난 8일에는 서울 잠실의 한 레스토랑에서 지인들을 초청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기자와 같은 생각을 그도 하고 있다면, 앞으로 15년 후의 조씨는 획기적인 주류산업 개발 5개년 계획하나 정도는 만들어놓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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