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音酒동행
Blues & Beer King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맥주엔 블루스가 최고(Blues&Beer King), 줄여서 B.B.King 되시겠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정도로 너무나 노골적이게 제목을 선정한 만큼 나의 블루스 사랑은 남다르다. 필자는 저녁에 술을 먹기 위해 저녁밥을 먹지 않는데-저녁을 먹으면 배부르니까!- 그런 이유로 홈술을 할 때에는 안주도 즐기지 않는다. 단지 술과 술에 어울리는 음악을 반드시 곁들일 뿐이다.
본 기고문의 이름인 ‘음주동행(音酒同行)’도 이런 배경 속에서 나왔다. 요즘처럼 열대야가 지속되는 밤에는 말이야 다양한 술이 있겠지만, 사실 직관적으로 맥주 아니겠는가. 여름엔? 치맥, 비 오는 날엔? 막걸리에 파전, 삼겹살엔? 소주가 무슨 공식마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뭐든 뻔 한 것에 질색팔색이지만 이 더위엔 두손 두발 들 수밖에 없으니 밤만 되면 왜인지 맥주가 당기는 것이다. 전통주에 한 몸 매진하느라 부족한 맥력(麥力)이지만 그래도 제법 아는 체를 해보자면 맥주는 보리와 홉(hop)을 주 원료로 해서 단행복발효 시킨 주류이다.
외국 사람들이 간혹 한국 맥주를 맛없다고 하는 것은 저 ‘홉’향이 부족한 이유가 크다. 하여튼 이때 발효 온도에 따라 크게 상면 발효 맥주와 하면 발효 맥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흔히들 말하는 에일이 상면발효에, 라거가 하면 발효에 속한다.
더 세세히 구분하자면 에일과 라거에는 효모의 차이도 있겠지만 맥주 교과서를 쓰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도 되겠다. 카스와 하이트로 구분되는 우리나라의 맥주는 대부분 라거고, 요즘 나오는 크래프트 비어들의 상당수가 에일에 속하며 대표적으로는 제주 에일 시리즈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라거보다 에일을 몇 배는 더 선호하기에 오늘의 주인공은 당연히 ‘에일’이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 장유유서가 고리타분한 옛 가치가 돼가고 있는 시국에 젊은이들은 새겨들을지어다. 위 격언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어른은 언제든 좋은 술을 알려준다. 나의 경우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직장 선배로부터 에일 맥주를 처음 얻어 마셨다.
지금보다는 조금 선선했던 어느 여름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고 2차로 당시에 유행하던 창고형 맥주집을 갔었다. 나는 수줍게 맥주를 많이 마셔보지 않았노라 고백했고, 지금도 맥주 애호가인 선배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이정표였다.
“어떤 맥주를 마시고 싶냐”는 선배의 질문에 난 여름밤이니 ‘상큼한’ 맥주가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마셨던 나의 첫 에일 맥주가 바로 ‘대동강 페일에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빠져버리고 싶을 만큼 강렬한 시트러스 향과 씁쓰레한 홉의 맛, 목을 톡 쏘지 않고 부드럽게 입안에 자글거리는 탄산의 포말 감까지,
그렇게 난 에일에 입덕(?)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에일 맥주가 눈에 띌 때마다 신나게 마셔댔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현재까지는 ‘발라스트 포인트’의 ‘스컬핀 IPA’와 스톤 브루잉의 ‘스톤 IPA’를 최고로 꼽는다. 두 맥주 모두 황홀할 만큼 폭발적인 시트러스한 과실 향과 씁쓰레한 맛의 어우러짐이 훌륭하다.

설이 길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미국의 IPA들에 페어링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블루스’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블루스 타임의 영향으로 느끼한 춤곡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블루스’는 미국에서 노예 노동에 시달리던 흑인들이 부르던 일종의 노동요였다. 노동요니 만큼 단순한 진행과 반복이 핵심인데 그 속에서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매력이 있는 장르이다.
이후 장르가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블루스 음악이 파생하는데 오늘날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인기 있는 스타일은 아무래도 밴드와 함께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를 활용하는 ‘시카고 블루스’다.

시카고 블루스의 아버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이른바 쓰리 킹으로 불리는 프레디 킹(Freddie King), 알버트 킹(Albert King), 비비킹(B.B.King), 에릭 클랩튼이 존경해 마다 않는 블루스의 거장 버디 가이(Buddy Guy), 전설 그 자체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일명 SRV), 당연히 블루스로 한정 지을 순 없지만 그 유명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그가 젊은 시절 몸담았단 존 메이올과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 비운의 3J 중 하나인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보컬, 흐느끼는 텔레캐스터가 인상적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 요즘 내가 좋아하는 젊은 밴드인 마커스 킹 밴드(The Marcus King Band) 등 며칠을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기라성같은 음악인들이 블루스의 대표자들이다.
한국에도 훌륭한 블루스 뮤지션들이 많다. 사실 블루스와 맥주의 페어링을 눈앞에서 확인한 것도 한국 블루스 밴드의 공연장에서였다. 두말하면 입 아픈 엄인호와 신촌블루스, 김목경 밴드, 이경천 블루스 밴드, 타미킴, 노병기의 블루스 밴드 BKB, 사자기타 최우준, 찰리정 밴드, 최항석

과 부기몬스터, 해먼 오르간을 엄청난 포스로 연주하는 락한밴드, 필자가 지극한 팬심으로 응원하는 한국 블루스의 아이돌 알버트 킴 등 많은 음악인들이 사실상 블루스의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에서 오늘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는 2년 전 요맘때 온 스테이지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고 결국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밴드의 프론트맨인 최항석은 한국 블루스 소사이어티의 대표로서 한국 대중들에게 블루스를 널리 알리는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 이 무렵에는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이틀에 걸친 비대면 블루스 페스티발을 개최했고 요즘도 꾸준히 한국의 블루스 뮤지션들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집에서도 훌륭한 블루스 공연을 즐겼음은 물론 한국에도 훌륭한 블루스 뮤지션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블루스와 맥주(Blues & Beer)의 페어링이 환상적이라는 것 역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공연장에서 배웠다. 바야흐로 2년 전 여름 역시나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밤 최항석의 공연장에서였다. 공연 도중 최항석씨는 물론 공연을 보던 관객 몇몇들도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는데, 어찌나 시원해보이던지. 내심 부러우면서도 당시에 난 혹시 공연하는 가수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시지 않았는데, 웬걸 맥주와 블루스에 한껏 달아오른 흥을 관객과 가수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광경이 정말 신나 보였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공연장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그 이후로 집에서 혼자 맥주를 즐길 땐 늘 블루스와 함께 하고 있다. 아, 물론 맥주는 무조건 IPA로.
아무리 무더위에 짜증이 솟구치는 여름밤이어도 시원하게 샤워한 후에 냉장고에서 갓 꺼낸 IPA의 향과 맛을 즐기며 블루스 리듬에 몸을 맡긴다면, 그 순간만큼은 여름밤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내가 보일 것이다.
◇ 필자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