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내 고향 술 두견주(杜鵑酒)를 그리며
육정균 (시인/부동산학박사/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
2022년은 바로 오행으로 봤을 때 물에 속하는 흑호랑이의 해이다. 물은 지성과 지혜를 나타내며, 유연하면서도 강하고, 흐르지만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2022년 흑호랑이띠는 변화의 해인데, 2월 1일에 시작되며, 우리의 설날이기도 하다.
몇 년째 코로나로 여전히 어려운 삶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고, 3월 9일에 대통령 선거까지 있어 변화가 뚜렷한 해이다. 따라서 모두 평화를 기원하고 사람들은 의욕과 활력이 넘치지만, 상대적으로 어떤 종류의 쿠데타, 혁명, 전쟁 가능성 및 극적인 반전의 기회가 있을 수 있는 변화의 해가 될 운이 있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라의 국운이 융성하고 개인과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더욱 꽃피우길 기원할 뿐이다.

어릴 적 설날이 다가오면, 종갓집이던 우리 집에서는 전통주로 담은 정종이나 고향의 민속주인 두견주(杜鵑酒)로 차례를 지내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 고향 민속주인 두견주를 소개하고 싶다.
두견주는 청주(淸酒)에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가향주(加香酒)이다. 알코올 농도는 15%인데, 진달래꽃을 다른 말로는 ‘두견화’라고도 하므로 진달래로 담은 술을 ‘두견주’라 부른다. 진달래꽃에는 다른 꽃보다도 꿀이 많아 술에 단맛이 난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沔川面)의 두견주가 유명하다. 두견주는 요통, 진통, 해열, 각연증(脚軟症), 류머티즘 등의 치료약으로 쓰여 왔으며, 삼월삼짇날의 절기주이다.《규합총서(閨閤叢書)》《술만드는 법》《시의전서(是議全書)》등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술과 시로 널리 알려진 이백(701∼762)과 두보(712∼770)가 진달래로 술을 담가 마셨다는 고사가 전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이 술은 이백과 두보처럼 풍류와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마시던 술이다.
두견주에 얽힌 이야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운양집(雲養集)》에 따르면 고려시대의 개국공신이며, 918년 신숭겸·배현경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복지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면천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
그의 17세 된 딸 영랑은 날마다 아미산에 올라가 아버지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100일 동안 정성스레 기도하였다. 100일째 되던 날 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면, 아미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을 써야 하며, 이 술을 100일 뒤에 아버지에게 마시게 하고, 그런 다음에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지성을 올리면 아버지의 병이 낫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영랑이 즉시 신선의 말대로 하자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후 아미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와 안샘에서 나오는 물로 빚은 두견주는 명약으로 알려졌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안샘도 지금까지 그 수맥을 잇고 있다.
이렇게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두견주의 전통이 끊어졌다가 다시 빚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일이다. 그동안 민간에서 약용으로만 전해 오던 이 술은 일제강점기와 1963년 정부의 양곡주 제조 금지 등으로, 한때 사라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견주 기능보유자인 박승목이 그의 할아버지 박성흠, 아버지 박찬성으로부터 두견주의 제조 비법을 은밀히 물려받았다. 그리하여 1986년 11월 1일 정부의 민속주 개발 계획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면천 두견주가 중요 무형 문화재(86-나호)로 지정되어 당진시의 명품 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흑호랑이 해가 오행으로 볼 때 물이라면, 그 물은 두견주처럼 나라 곳곳에 널린 명품 술로 맑은 정기와 약효가 있어 사람마다 건강과 행복을 가져오는 약술이었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코로나의 기승으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디 가서 술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시기 어렵고, 음식점을 하는 자영업자들도 마음대로 손님을 받을 수 없어 자진 폐업이 다반사다. 그런데, 정치가들은 생계가 막연한 자영업자들에게 ‘손실보상’을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전염병같이 우연히 닥친 사고에 대해 나라가 불시에 음식점의 영업을 막은 조치에 대한 손해의 보전은 ‘손해배상’이 맞다. ‘손실보상(損失補償)’은 헌법 제23조 제3항의 규정에서 정한 공공필요에 따른 사유재산권의 침해로 인한 특별한 희생에 대한 재산적 보상을 말하고, ‘손해배상(損害賠償)’은 국가라도 불시의 위법한 행위로 타인에게 끼친 손해를 전보하여 손해가 없었던 것과 동일한 상태로 복귀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용어 하나라도 더 정확하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변화된 한 해이길 바란다. 술은 술이고 물은 물이기 때문이다.
필자 : 육정균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 출간▴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부동산학박사▴(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