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平生 살면서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에 있었다 하리요”
술 취했을 땐 2가지 혼란과 3가지 욕심 생겨
君子는 여행할 때 그 지방의 술부터 음미해
속인(俗人)의 술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또한 군자(君子)의 술이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속인은 술을 마심에 있어 그 즐거움만 알고 법도를 모르는 까닭에 취기(醉氣)의 운행을 절제하지 못한다. 또 군자는 법도에만 치우치므로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명(命)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작인(酌人)은 도인의 술을 구(求)하고자 하는 것이다.
술이란 속인이 마시면 마물(魔物)이요 도인이 마시면 천명(天命)을 뜻하는 신물(神物)인 까닭에, 작인이 잔을 들어 술을 권하는 것은 성취를 기원하는 것이고 또한 안락을 기원하는 것이다. 술이 갖는 뜻은 지대하다 할 것이다. 이것을 쓰는 것 또한 지난하다.
천하에 인간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에 어려운 일은 여색을 접하는 일이요, 그 다음이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 다음이 학문 하는 일이다. 주(酒), 색(色), 우(友), 학(學), 이 네 가지는 군자가 힘써 수행(修行)해야 하는 것이다.
술이란 마시면 정(精)을 손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작인이 평소 정을 기르지 않으면 술 마시는 일은 불가하다. 양정(養精)과 양신(養神)은 작인이 힘쓰는 지도(至道)이다. 정(精)이라는 것은 발하되 불출(不出)이면 양(養)하고, 신(神)이라는 것은 생(生)하되 가라앉으면 양(養)이 된다. 그런 까닭에 술에 취하여 혼란하고 욕심을 행하면 정신이 함께 상한다.
대체로 술에 취했을 때는 두 가지 혼란이 오고 세 가지 욕심이 생긴다. 두 가지 혼란이란 말과 생각이다. 세 가지 욕심이란 첫째는 색욕(色慾)이요, 둘째는 식욕(食慾)이요, 셋째는 안거욕(安居慾)이다. 만일 작인이 취중에 능히 두 가지 난을 평(平)하고 세 가지 욕심을 제한다면 술을 오래 마셔도 될 것이다.
술이란 싸움 할 때의 적과 같아서, 처음부터 이겨나가면 취기가 약해져서 내가 점점 강해질 수 있고,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취기가 강해져서 나는 점점 약해지고 마침내 패하게 된다. 취기에 패하면 신정(神精)이 상하고 의지가 꺾여서 후일에도 장애가 된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술을 들 때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반드시 이기며, 신정을 보(保)하여 지(志)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그러하면 군자는 날이 갈수록 상달(上達)하여 덕이 높은 산봉우리처럼 된다.
옛 선인(先人)이 말하기를 “취중의 하루는 평시의 한 해와도 같다”고 했다. 이는 취중의 마음에 정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널리 여행을 할 때도 그 지방에 도착해서는 그 지방의 술부터 음미하는 것이다. 만일 경치만 구경하고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그 지방에 있었다 하리요. 한 평생을 살면서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에 있었다 하리요. 술을 마신즉 천하가 정(情)답고, 천하가 정다운즉 만상(萬想)이 일어나며, 만상 중에는 큰 뜻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천하에 나서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금수와 다르지 않다. 사람은 생각이 많으면 뜻이 많고, 뜻이 많은즉 그 중에서 도리를 찾을 수 있다. 군자의 생에 있어서 술을 마셔 흥이 많다면 이는 천행에 크게 참여하는 것이니, 술 마시는 일이 어찌 대사(大事)가 아니리요. 군자는 대체로 다섯 가지의 흥이 있는바, 그 일(一)은 고사(高士?인격이 높고 성품이 깨끗한 선비)를 찾아보는 일이요, 이(二)는 학문에 진보가 있는 것이요, 삼(三)은 벗을 만나는 일이요, 사(四)는 중사(重事)를 성취하는 일이요, 오(五)는 술 마시는 일이다. 혹자는 말한다. “술 마시는 것이 흥겨운 일이기는 하나, 그중의 생각은 어지러운 것뿐이다”라고. 이는 그렇지 않다. 술을 마셨을 때 어지러움만 있는 것은 소인의 정이요, 군자는 취함에 있어 많은 생각이 다 조리(條理)가 있다. 혹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취중에는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인가?” 이는 그렇다. 취중에는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커다란 수행인 까닭에 군자는 술 마시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대저 성인(聖人)이 인간을 교화함에 있어 많은 행실을 단속하건만, 술에 있어서만은 그 혼란조차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속된 범부(凡夫)가 술의 폐됨을 논하고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범부는 누가 술을 권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술을 권하는 것은 천명을 기원하는 일이요 사귐을 청하는 일인데 어찌 두려워하는 것일까.
공자는 말하였다. “말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말 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라고.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을 권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작인이 술을 받아 한 잔 마시는 것은 견(見)이라 말하고 예(禮)로써 가(可)하다. 두 잔을 마시는 것은 상(想)이라 말하고 이는 정으로써 가하다. 세 잔을 마시는 것은 좌(坐)라고 말하고 이는 교(交)로써 가하다. 군자가 서로 보고 앉아 세 잔의 술을 마시면 이는 사귐이 성립된다. 사람과 사람이 사귐에 있어 천하에 술 만한 것이 있을까.
술이란 인간이 가진 원한마저도 풀어주는 것으로, 취중에는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 혹자는 말한다. “술을 마시면 각종 욕심이 생긴다. 그러므로 취중의 마음은 선하지 않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은 나쁜 마음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남을 불리하게 하는 생각이라면 행동을 삼가면 될 것이다. 또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속에는 욕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깊게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노자가 말하기를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地法天 天法道 徒法自然)”이라고 했다. 자연이란 만물의 정이고 동인이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도인은 술을 즐겨한다. 술이란 것은 마셔서 취하면 맺힌 것을 풀어주고 꾸민 것(作)을 깨뜨린다.
대저 자연이란 생각이 없건만, 만물에 통하고 지어냄이 없건만 천지화육(天地化育)에 합(合)한다. 작인이 술을 마셔서 자연에 도달한다면 이로써 도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도인의 마음이 자연스러운 까닭에 천하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도인은 술에 취하면 천지의 흐름 속에 있고, 깨어 있으면 천지의 부동지원(不動之源)에 있다.
군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그 뜻이 천지와 더불어 하나임을 즐기는데 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천명을 사랑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술을 들고자 하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비록 속인이라 할지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이란 실질(實質)의 뜻이 있으므로 이 상태가 되면 마음은 크게 열린다. 마음이 열리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된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의 취함에서 천원(天元)의 뜻을 깨닫지만, 또한 그 머무는바 절도(節度)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 절도라는 것은 큰 뜻을 나눔에 있다. 비록 천지가 하나이건만 그 작용이 나누어져 있으므로 술을 마심에 있어서 법도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실질이 문화보다 앞서면 야(野)하고 문화(文化)가 실질보다 앞서면 약하다”고 했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도 취중에 자연이 격식보다 앞서면 번거롭고, 격식이 자연보다 앞서면 위축된다. 취흥과 법도가 남고 부족함도 없으면 가히 도작(道酌)이라 할 수 있다.
술이란 본래 혼자 마셔도 좋은 것이지만 천(天)의 도리(道理)가 홀로 있지 않는 것이므로 더불어함께 마시는 것이 더욱 좋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은 소작(素酌)이라 한다. 둘이 마시는 것은 화작(和酌), 셋이 마시는 것은 한작(閒酌), 넷이 마시는 것은 안작(安酌), 다섯이 마시는 것은 수작(秀酌), 여섯이 마시는 것은 전작(全酌), 일곱이 마시는 것은 등작(登酌), 여덟이 마시는 것은 임작(臨酌), 아홉이 마시는 것은 연작(宴酌)이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