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지금도 천년의 세월을 빚는다

오르고 내리길 수백 수천 번. 벽암스님은 수왕사에 있을 때 더욱 빛난다. ‘곡차’를 빚는 것도 수행의 일부라 했던 그다. 시루 밑에서 올라오는 불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스님은 지금도 천년의 세월을 빚는다

 

사찰법주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

 

水王寺 주지들이 代이어 계승

12대 벽암스님 송화양조 세워

고산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줘

 

 

소줏고리를 타고 내리는 송화백일주 한 방울, 또 한 방울. 입을 즐겁게 할까, 아니면 생각을 즐겁게 할까.전주 한옥마을에서 25㎞쯤 되는 거리에 모악산(母岳山)이 있다. 산 정상에 어미가 아기를 품은 모습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다. 793m 높이의 이 산 7부 능선 즈음에는 천년 고찰 ‘수왕사(水王寺)’가 있다.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 백제로 망명한 보덕(普德)이 680년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물왕이절’로 불렸으나 한자로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쪽에 흐르는 석간수(石間水)는 약수(藥水)로 이름나 있다.

곡차(穀茶). 예부터 사찰에서 술을 가리킬 때 쓰던 말이다. 차(茶)를 ‘다’로도 쓰고 읽어 ‘곡다’라고도 한다. 수행(修行)하는 입장에서 대놓고 술이라 말하기 겸연쩍어 대신 그렇게 불렀다.

수왕사는 종교와 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는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이 술은 애초에 수왕사의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였다. 조선 인조 때의 명승(名僧)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처음 만들어 지금껏 살아 숨 쉬고 있다. 주지가 다음 대(代)의 주지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그 비법을 잇고 있다. 그렇게 비전(秘傳)돼 온 까닭에 일제 강점기시절이나 밀주 단속이 심했던 때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송화백일주에는 꽤 많은 재료들이 들어간다. 허나, 모두 모여 온전한 하나가 된다. 그것 또한 배움이다.수왕사의 주지 벽암(碧巖)스님. 12세에 출가해 1960년부터 이 절에서 법력(法力)을 키웠다. 그는 송화백일주의 12대 전수자다. 199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식품 명인(名人) 1호로 지정됐다. 98년에는 농수산물대축제 전국품평회에서 민속주로는 최초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해발 800m 부근의 수왕사에서 참선을 하던 스님들은 기압에 의해 발생하는 고산병(高山病)과 싸워야 했죠.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차에 스님들은 지천에 깔린 소나무 꽃(松花)을 이용해 술을 만들었죠. 그것이 지금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전해져오는 송화백일주입니다.”

벽암스님은 92년 모악산 아래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송화양조’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송화백일주를 빚기 시작했다. 명맥을 후대에 계속 잇게 하기 위함이다. 송화양조는 현재 벽암스님의 제자인 조의주씨가 맡고 있다. 조씨는 송화백일주 13대 전수자다.

불길이 타오른다. 스님들은 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었을 텐데. 궁금해진다.송화백일주를 빚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허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빚는 이의 마음이다. “좋은 술을 빚는 데에 비법이란 없다. 그저 정성만이 답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지금도 가슴 한 쪽에 새겨져 있다. 약수는 술이 되고, 그 술은 역사가 됐다. 그렇게 천년을 흘렀다.

먼저 찹쌀과 백미, 누룩을 원료로 송홧가루를 섞어 발효시킨다. 여기에 솔잎과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등의 한약재를 넣고 100일 동안 저온에서 장기 재숙성해 만든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원숙한 맛을 내기 위해선 3년을 더 묵혀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알코올 도수 38%의 깨끗한 송화백일주가 완성된다. 술에 송홧가루를 넣는 이유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송홧가루가 좋은 효모를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송화백일주는 특유의 향과 약재에서 우러나온 향미가 독특하다. 오래 두고 묵힐수록 향미는 더욱 좋아진다. 은은한 솔 향과 달짝지근한 뒷맛도 매혹적이다.

벽암스님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었다.

“오래 전 일인데 어느 날 TV 드라마를 보니 우리 술이 나오는 거예요. 제품을 협찬한 게 아니어서 깜짝 놀랐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선물로 줄 때 비쳐졌는데 이름이 확실히 보이더라고요.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꽤 오래 나와서 한참을 그러고 봤네요. ‘정말 좋은 술이니 한 번 마셔보라’고까지 해요. 허허. 홍보 제대로 된 셈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송사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송화백일주를 무척 좋아했다 하더라고요.”

벽암스님은 내용의 진가(眞假)를 떠나 송화백일주가 일반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잠시나마 흐뭇했다며 웃었다.

송화양조 전북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64-1 ☎ 063·221·7047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