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묘소를 다녀와서

선배의 묘소를 다녀와서

 

임재철 칼럼니스트

 

생명의 온기조차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던 나목(裸木)에서 싱그러운 연초록의 실록을 보게 되는 오월이다. 연초가 어제인 듯싶었는데 봄이 오고 서너 달이 휙 지나가 행사가 많은 가정의 달이다. 분명 가슴 뛰던 시절의 오월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많은 달임을 느낀다. 그것은 더 없는 은혜요 감사일 것이다.

 

세월 저 너머로 무심하게 그럭저럭 보내다가 지난달 말 올 초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선배 한 분의 묘소를 다녀왔다. 이른 새벽에 다른 선배 세 분을 모시고 길을 나섰다. 물과 커피를 사들고 낡은 차를 운전해 남쪽 끝 고흥으로 향했다. 꽤 먼 길인지라 힘도 들고 교대로 차를 몰아 열심히 달렸다. 마음은 불원 천리였지만 아닌 게 아니라 장거리였다. 하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고초는 그 뿐, 모두가 마음으로는 선배의 묘소를 빨리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필자는 알고 있었다.

 

선배가 예전에 좋아했던 와인과 간단한 안주, 그리고 꽃을 준비하여 갔다. 다행히 비가 그친 뒤 말끔한 묘소에서 필자 일행은 선배께 잔을 올리며 마음은 우울하고 무거웠지만 각기 깊은 대화를 하고 기도를 올렸다. 아직 잔디가 여린 묘 앞에는 먼저 다녀간 가족들이 놓아둔 국화가 있었다. 필자는 양지바른 무덤가를 돌며 옆에 계실 때 좀 더 애틋한 시간을 경험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과거의 어리석음을 새삼 깨달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세상만사, 길게 살아야 백 년인데…, 잠시 세상과 멀어진 존경했던 선배의 묘소에서 술 한 잔을 따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못내 참았지만,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산을 내려오며 부질없는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항상 곁에 머물 줄 알았건만 이제는 그저 마음은 마음일 뿐이구나. 늘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인생길이며, 이미 먼 저곳으로 간 이름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구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해도 그립구나.

 

말하자면 성묘길이 아니라 세월의 굴레 냅다 집어 던지고, 여러 선배들을 모시고 함께 하는 나들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자리를 돌아서는데 시야가 흐려지며 가슴이 찡해왔다. 지난해 6월 친구 두 명을 떠나보내고 상실감이 너무 커 이젠 정말 각자도생 하며 뿔뿔이 흩어지는 나이가 되었는가 싶던 기억이 있는데, 오월 하늘 아래로 돌아와 스멀스멀 뒤돌아보니 사는 것이 무엇이며 숨 쉬는 게 무엇인지, 생각의 끈을 잡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니 모든 게 무채색으로 변한다. 아무려면! 그래서 더 서글플까.

 

우리는 한평생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런 저변과 동시에 우리가 별고 없이 잘 지내는지, 건강은 하는지, 안부를 전하는 친구가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세상의 서로 삶을 염려하여 잘 있느냐 물어 오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안부를 물어 보고 푼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카톡을 보내주는 이가 있음은 늘 우리를 생각하고 있음이며, 카톡을 받아 보는 이는 늘 정겨움을 느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혼자가 아닌 우리의 모습일 거다. 즉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하여 혼자 가는 길이 아닌 둘, 셋이 가는 길 그 길의 동행자가 되는 거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동트기전 매일 아침 카톡을 보내주는 한 친구가 있음에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정은 무엇일까? 강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만났든 그 인연과 만남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지근거리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공감 또한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르고 세상의 소리를 듣고 또 살아가며 서로의 사연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을지라도 언제든 일상을 기꺼이 위로할 수 있으며, 그 위로는 진정 사랑의 마음일 거다.

 

누군가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하겠지만, 흐르는 세월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즐기며 성실히 살아가는 일이야 말로 삶에 대한 최상의 수사(修辭)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세상사복잡하다보니 눈귀를 이리저리 나누느라 감성이 메말라가고 심신이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위를 돌아보면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경제침체 등으로 모두가 삶이 어렵고 퍽퍽해졌다.

현실의 인심들은 인지상정 그렇게 저렇게 외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되고 재단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자는 그저 신록의 누리를 산책하고 소소함을 어루만지며 늘 움직이는 다동 나그네이고 싶다. 때가 되면 떠나고 보내는 것이 나그네의 정 아니던가. 나그네는 오늘도 여러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세상 속에서 다시 나아갈 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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