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비슷한 러시아의 음주문화


우리나라와 비슷한 러시아의 음주문화

 

조성기(아우르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15세기부터 수도원에서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

전 국민의 87.0%가 술을 마시고

1911년 보드카가 전체 소비의 89.3%의 차지

 

러시아 의학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을 치료제로 사용

봉급에서 술값이 차질하는 부분이 너무 큰 러시아

주량, 음주 방법, 음주 후 결과에 대한 태도 우리와 흡사

 

 

우리가 러시아에 술을 수출한다면 무엇이 얼마나 가능할까? 그동안 러시아 사람들의 음주스타일은 단연 증류주인 보드카 우선주의였다. 보드카하면 러시안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소주나 돗수높은 전통주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인들도 맥주를 중심으로 저 도주 소비를 늘리고 있다. 상전벽해인 것이다. 체제 변화와 함께 러시아의 음주문화도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맥주소비는 벌써 세계적인 수준이다.

또한 폭음과 과음을 일삼는 음주스타일은 전과 다름없다. 술을 대하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나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글로벌화가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도 반응을 보여 최근 음주관련 규제가 시도되고 있다. 그 효과가 아직 크지 않다. 하지만 이제 보드카가 러시아의 과거 권력일 뿐이라는 평가는 오류가 아닐 것이다.

 

술이 정복한 러시아

러시아인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러시아를 먹고 있는 게 맞다. 서기력 988년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를 두고 국교 선택으로 고민하던 블라디미르공은 “이슬람교는 금주를 규범으로 하므로 러시아인의 생활과 너무 큰 격차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전적으로 보드카 때문은 아니지만 중요한 영향요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15세기부터 수도원에서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고, 1223년 몽골군의 침입시 패한 원인이 장군들이 전장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사가들의 패인 분석이긴 하지만 신뢰할 만하다. 1648년 자료에는 러시아 남성 1/3이 술집에 빚이 있다고 적혀있다. 당시 행정가들은 오히려 과음을 인정하고 격려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중요재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치가들 중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970년 자료에는 정부재원의 1/3이 주세인데, 1850년경에는 주세가 절반을 넘었었다. 레닌이 1917년 러시아혁명을 한 후 술을 통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레닌 사후 스탈린은 바로 통제정책을 폐기한다. 역사적으로 레닌과 고르바초프 이외에는 술을 조금이라도 미워한 정치가를 찾기 힘들다.

195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음주소비량이 2배가 뛰었고, 통계에 잡힌 술소비량만도 1인당 평균 15.1리터나 되었다. 아마 기록이 없는 음주량을 전부 합치면 엄청난 량을 마셨을 것이다.

“1991년 러시아에서 보수파 쿠데타를 무엇이 대적했을까?” 정답은 ‘보드카’다. 쿠데타 발발 후 옐친은 국회의사당을 떠나지 않았고 보드카에 취해 탱크에 맞서 군중연설을 했다. 옐친이 아니라 보드카가 한 연설이었다. 물론 쿠데타군도 취중에 모의를 했고 부실한 준비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모두 보드카가 한다.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로 쉽게 전환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러시아 역사가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전혀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다. 1996년 역사가 메드베드프는 공기업 자산의 민간이양, 정부재산의 재분배 등 권력이양 과정이 무리 없이 진행된 이유를 보드카에서 찾는다. 모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전환에 대한 스트레스도 쉽게 잊혀졌다는 것이다. 보드카는 바로 러시아의 체제제조자(regime maker)가 된다.

러시아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 게다가 폭음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한 경향은 작금의 우리나라 주당들과도 유사하다. “우리나라 민족과 러시아인들이 유사한 점이 많다”는 의견, 외신에서 음주량을 논의할 때 러시아와 우리를 비교하는 외신들이 가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른다. 러시아의 보드카 사랑과 우리의 소주 사랑은 증류주를 짧은 시간에 다량 마시는 취향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주량, 음주 방법, 음주 후 결과에 대한 태도 등이 유사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하이디 브라운은 2011년 정책논문에서 러시아의 알코올중독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부서진 공원의자에 앉거나 기차역에 앉아 담배를 피며 술에 취해 있는 사람. 그는 다른 생각은 전혀 없다. 다음 술잔을 언제 마시고 돈은 어디서 나지?” 러시아 남자는 그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늦은 밤 대도시의 지하철에 누운 취객들을 보면 우리와 그들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에서의 보드카와 맥주

보드카 없는 러시아를 생각할 수 있을까. 위명(委命)을 지닌 러시아의 보드카에 도전장을 낸 것이 맥주다. 뮌헨이 독일의 맥주도시라면 러시아의 맥주수도는 페테스부르그다. 페테스부르의 청년들은 상당수가 보드카에서 맥주로 갈아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보드카 품질문제와 함께 구입곤란의 애로를 호소한다. 러시아에도 청소년 음주가 문제다. 심지어 법적 술 구매연령 제한이 18세로 상점에서 보드카를 살 수 없다는 불만을 표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맥주는 러시아에서 술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알코올 10% 이하의 음료는 술이 아니고 식품으로 분류했었기 때문이다. 맥주가 술이 된 것은 2013년 1월 1일 부터다. 역사적인 날이다. 맥주에 대한 세금도 최근 200%로 올랐다. 그 이후 맥주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청년층의 인식과 충성도를 볼 때 가격 충격은 그다지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러시아에는 “보드카를 마시면 짐승이 되고 맥주를 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지난 10년간 맥주 소비는 40%가 증가했고, 보드카의 소비량은 30%가 감소한 것이 그 소문의 실체다. 이미 중국, 미국, 브라질에 이어 러시아의 맥주시장이 세계 4위로 등극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코카콜라처럼 캔 맥주를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들고 다닌다. 주말이 되면 그 수가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최근 자료에는 러시아의 음주량이 위험기준치의 2배가 넘고, 특히 러시아 남성의 기대수명은 64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알코올소비량과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마시는 폭음에 돌리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음주관련 규제나 법도 술 문제들을 예방하는 프로그램들도 엉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는 술로 분류되지 않던 맥주가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서는 건강 위해성을 높이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맥주가 술문제에서 예외적 물질이 아니라는 것은 서구에서는 이미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맥주에는 2010년에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고, 술로 분류되기 시작하자 가격이 올랐다. 그 영향으로 지난 2년 동안에 소비량이 15%나 줄었다. 보드카의 주세가 맥주 보다 10배나 비싸지만 갑작스런 주세부과는 맥주소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11년 주류 판매장소 규제, 2012년 TV, 라디오, 인터넷, 광고계시판 등의 광고규제로 주류규제가 본격화되었다. 서구의 규제정책이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러시아 맥주시장은 덴마크의 칼스버그사가 생산하는 발틱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인베브, 하이네켄, SAB밀러 등이 러시아내 주요 맥주생산자들이다. 특히 칼스버그는 수입의 1/3과 이윤이 절반을 러시아 시장에서 낳는다. 러시아의 맥주시장은 추가 성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말 드문 상황이다.

보드카가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주류임은 전과 다름없지만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통계는 전체 1인당 알코올소비량 13리터 중 8리터가 보드카 소비량이다. 점유율이 61.5%나 된다. 같은 시기의 영국은 총소비량 10리터 중 2리터가 증류주 소비량이다. 20%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2010년 통계로도 증류주 51%, 맥주 38%, 와인 11%다.

러시아 학자들은 러시아의 음주문제가 소비량이 아니라 폭음스타일에 있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많이 마신다는 입장은 핑계에 불과하지 않을까. 술 마시는 방식은 바꾸더라도 주량은 유지하고 싶다는 러시아인들의 소망이 학자들의 연구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과연 러시아인들의 선호주류가 맥주로 순위가 바뀔 수 있을까. 러시아인들의 과거의 주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들의 주류소비 스타일이 과연 변할까. 이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만 증류주 비중이 줄고 맥주나 와인의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가 이미 10년역사를 가졌다는 것만이 사실일 뿐이다.

 

러시아인의 음주량과 음주사

오래 전 러시아인들은 집에서 양조한 술을 마셨다. 사실 초기의 술은 꿀 술과 맥주였다. 술이 공식 양조된 초창기에 술에 과세를 했는데, 당시 명목은 ‘유흥세’였다. 보드카가 러시아 사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500년 대였다. 정부는 민영주점을 폐쇄했다. 소위 황제가 인가한 주점을 개설하고는 유통을 틀어쥐었다. 판매시스템은 두 가지 유형이었다. 하나는 정부 직영이었고, 하나는 민간 위탁이었다.

서양에서 세무서 직원과 선술집 주인은 ‘퍼블리컨(Publican)’이라고 불린다. 정부직영 주점은 전에 세무서 직원이었던 자가 주인이 되어 경영하였고, 민간 주점인 펍은 허가세를 받고 민간인에게 위탁 운영되었다. 1600년경의 정부예산의 중요한 부분이 술 판매이윤이었다. 1600년대 중반에 정부직영 술 판매는 사라지고 전부 민간 위탁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4년 마다 경매를 통해 보드카 판매권이 변경되었다. 술집 주인들은 당연히 판매이윤을 챙겼고 부유한 생활을 했다.

1859년에서 1863년 사이의 연간 주류판매이윤은 2억2천만 은화루불(Rubles)이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술 판매이윤이 술을 제외한 모든 물품의 판매이윤의 10-11배쯤 되는 것이다. 대단한 규모였다. 당시 러시아의 주류 판매량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게 한다.

이 상황은 주류 판매업자의 권한남용을 가져왔다. 시민들은 이를 증오하여 폭력사태도 발생하였고 절주운동이 나타날 조짐도 보였다. 그 과정을 거쳐 1863년에 알코올의 모든 생산과 교역에 대해 과세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러시아 정부의 알코올 정책기조는 1904년 재무성 발표 자료로 알 수 있다. “알코올 소비로 늘어나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국민복지가 증대되었다는 지표다” 놀랍지 않은가.

러시아의 주류소비량은 1960년대로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체로 8리터 내외였다. 1990년 이후 전체 술 소비량은 점차 증가하여 1995년에 10리터를 초과한다. 최근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은 11.5리터 수준이다. 이는 그 이전 3년과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이므로 정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기록이 없는 술소비량도 3.5리터-4.5리터로 추산되고 있어 기록소비량(recorded consumption)과 합친 총 술소비량이 15-16리터 수준이다. 남성은 23.9리터, 여성은 7.8리터 수준의 술을 마시고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이상이다. 유럽지역 전체평균이 11-12리터 수준이므로 러시아인들의 음주가 과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음자 통계를 보더라도 최근 인구의 19.1%가 과다 음주자이고, 음주자들만을 기준으로 하면 과음자가 28.2%나 된다. 많은 수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금주자 통계는 남성 6.5%, 여성 18.5%다. 합쳐서 13.0%이니 전 국민의 87.0%가 술을 마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주자 만을 대상으로 할 때는 15세 이상 인구 남성이 32.2리터, 여성은 12.6리터를 마시고 있고 평균 22.3리터나 되는 량이다. 알코올 사용 장애자는 이중 31.0%이고 알코올 의존자는 16.5%이다. 유럽 전 지역 평균 4.0%보다 4배나 되는 숫자다. 러시아가 알코올 문제가 큰 나라라는 사실은 숫자로 확인된다.

 

직업별 음주문화

러시아의 농부, 노동자, 성직자들, 군인, 지주와 귀족들의 음주량과 음주행위는 독특하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농부는 통상 휴일, 결혼식, 축제일과 장례식, 마을의 집단행사, 품앗이 한날 등에 마신다. 1870년경 농부 350명당 1개의 주점이 있었다. 보드카에 지출한 비용은 가구당 36루불이었다. 그 량은 연간 40%짜리 보드카 7통(12.3리터=20병=80잔) 정도였다. 당시 러시아 농부들의 생활이 상당히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농부들도 상당부분 굶주렸으며 식사는 대부분 빵과 고기를 넣지 않은 양배추 스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낙천적 성향을 가진 러시아인들은 휴일에는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러시아 북쪽지방이나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소수민족들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면서 짜르의 약탈적인 정책에 시달렸다. 원주민들이 독한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정부의 수탈대상이 되었다. 지방장관들은 술 판돈으로 모피를 사들였다. 보드카를 팔아 토착민들의 권리를 대부분 사들였다. 유목민들의 야영지에서 술 한 병의 가격은 4루불이었는데 담비생가죽은 3루불이었다. 술을 통한 약탈이 전체 식민지에서 자행되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대륙 이주시 발생한 일이 러시아의 동진시에도 그대로 확인된다.

노동자들은 취할 구실과 이유가 많았다. 당시 노동자들은 연간 196일을 일했다. 봉급날 술 마시는 풍습도 다름없었다. 노동자들은 퇴근 후 술집 근처를 배회했다. 취직, 졸업, 만남과 이별, 계약, 구매 등의 자리에서 술을 당연히 마셨다. 당시 도시에서는 3-6리터짜리 큰 병으로 술이 판매되었다. 점차 3리터짜리 작은 병만 판매해야 하는 도시가 생겼다. 그 후 일부 100그램이나 20그램짜리 작은 병도 생산되었다.

농부나 노동자 중 빈곤층도 과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권층이 여유, 허영과 과시욕으로 과도하게 마셔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러시아 음주문화를 이야기할 때 성직자들의 음주문제가 중요하다. 경전에 물론 적당한 음주가 허용되었고, 와인이 교회의 예식, 의식, 영성체, 결혼 등 성찬행사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도덕을 징표랄 수 있는 성직자들의 만취 행위는 일반인들에게 즉시 전파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알코올 남용의 전도사가 성직자들이었다. 그래서 1697년 피터대제는 모스크바의 주교에게 성직자들이 주점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성직자들의 음주는 줄지 않았다. 1880년 15명의 성직자가 취중 비행으로 인해 법적 선고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수도원내 문제는 더 심각하였다. 러시아의 수도원은 보드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승들이 너무 많이 마셔서 수도원 내에 특별감옥을 설치하기도 했다. 만취한 수도승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금주교육을 시켰다는 자료가 있다. 중세에 이미 수도원에서 알코올 남용 및 의존에 대한 적극적 대책이 시작되었다.

지주들이 러시아식 전통 음주문화를 확대한 또 하나의 계층이었다. 시베리아의 한 지주가 그의 아내에게 한 말이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여름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드카 한잔(200그램)을 마시고, 들판을 걷는다. 6시에 다시 한잔 마시고 일터로 간다. 8시에 다시 보드카 한잔 마시고 잠깐 쉰다.” 다시 말하면 종일 그 지주는 2시간 마다 1잔씩 마셨고 종일 취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육군에 공식 술배급이 있어 만취하는 경우가 성행하였다. 군대가 취하는 것은 러시아군의 특징이다. 전시체제 하에서도 러시아병사들은 전투 중 주 3회, 전투가 없을 때 주 2회 보드카 한잔(0.16리터)씩 배급받았다. 평시 지역사령관들의 재량 하에 1년에 15회 가량 보드카 배급이 있었다. 주로 날씨가 나쁠 때, 기동연습 중,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등이었다.

술을 안 마시는 병사들은 보드카 대신 6코펙(1/100 루불)을 받았다. 피터대제 치하의 해군은 1주일에 4잔씩 보드카 배급을 받았다. 1761년에는 하루에 한잔씩 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배급량이 많았다기보다는 허용적인 음주규범이 병사들의 만취습관을 유도한 것이다.

당시 군인들은 1/4-1/2정도가 술 대신 돈으로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징병된 군인들은 제외한 나머지 직업군인들 간에는 강제음주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술을 억지로 먹이는 풍습은 국가와 인종을 넘어 공통적인 일이다. 1908년에 와 군대에서 술을 배급하는 일과 영내 주류 판매가 금지되었다.

귀족들이나 황제들이 만취했다는 기록도 수없이 많다.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젊은 시절 주연과 폭음을 일삼았다. 황제가 되기 전 그는 청년장교로서 근위대에 근무했다. 당시 근위대는 음주놀이를 통해 일상에서 과음을 했다. 예를 들면 ‘계단 오르기’는 1층에서 2층까지 계단에 1잔 씩 놓고, 2층에 도착할 때 까지 차례대로 전부 마시는 놀이였다. 서로 12인치 간격으로 늘어선 장교들이 모두 보드카 잔을 들고 일시에 마시는 놀이도 있었다. 소위 러시아 병사들의 폭음(원샷) 행사다.

과음과 폭음은 성직자, 군인, 귀족, 지주, 황족 등 특권계층과 빈곤계층 등 모든 이들에게 예외가 없었다. 보드카는 생활필수품이었다. 1911년 독주인 보드카가 전체 소비의 89.3%의 차지하였다. 마시는 방식도 오랜 시간 동안 맥주나 와인을 홀짝이는 방식이 아니라 폭음이나 한자리에서 다량 마시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취중에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범죄가 빈발할 수밖에 없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증류주의 거래가 중단되었다. 동시에 와인 생산자와 맥주제조업자들은 정부의 우대조치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인들이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16년까지 불법증류주 제조, 가정에서의 양조, 비음료 알코올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날 때 까지 술창고는 항상 꽉차 있었다.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들은 5년간 유형이나 재산몰수 등 조치를 취하면서 밀주의 파급을 막았다. 1925년에는 보드카를 다시 공식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30년 동안 지속된 기아와 황폐, 2차 세계대전, 국가 재정비기간 동안에는 알코올문제나 관련된 문제가 사라졌었다.

1958년, 1972년, 1978년 3차례에 걸쳐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내각은 적정량의 알코올 소비는 권장하기로 결정하였다. 술은 여가를 보낼 때나 인간관계에서 뿐 아니라 공적 자리에서도 필요 불가결한 물질이 되었다. 그러자 알코올의 부정적인 결과가 늘기 시작하였다. 20년 동안에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1960년 3.6리터에서 1980년에 8.7리터로 2.2배나 증가하였다. 알코올의 남용으로 인한 비행은 5.7배나 증가하였으며 알코올 중독자는 7배가 늘어났다.

그러한 문제가 계속 진행된 결과 1985년에는 반알코올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많은 피해를 경험한지 200년이 지나서야 술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그랬다는 사실을 들으면 갸우뚱할 것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반알코올캠페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술문제가 심할 때 음주를 반대하는 정책이 수립되거나 규제가 강화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예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그 캠페인들을 치밀하게 전개하지 못했다. 그러니 하더라도 그다지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통상 알코올의 음용관련 정책에 대해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검토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술이 당시의 러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저항이 컸고, 효과적인 사회운동이 가져야 하는 원칙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러시아의 알코올 문제

계속 술을 남용할 때 알코올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러시아인들이 부정하지 않는다. 알코올 의존에 사회적, 개인적, 생화학적 이유가 있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러시아인등의 술소비도 역사적 조건과 알코올에 대한 공중의 태도 등과 관련성이 있다.

감정의 불안정, 미성숙 등 사람의 특성이나 간질환 등의 신체적 문제가 알코올 중독으로 발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계가 정리한 러시아인의 음주표준형은 뭘까. 대체로 15세 이전에 음주를 경험하고, 19살 쯤 되면 정기적으로 마시며, 25세 쯤 되면 자주 만취한다는 것이다. 25세 꽃다운 나이에 만취가 일상이 되는 것이다.

러시아 술꾼들은 90% 정도가 음주이유를 친구들 때문으로 돌린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프로필을 보면 육체노동을 하거나 학력이 낮으며,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급여는 어느 정도 되는 경우다.

술에 강한 러시아인들에게 술 문제는 예외가 아니다. 술은 러시아에서도 개인, 가족, 사회에 대가를 치르게 한다. 생활에서나 작업현장에서 취해 의료적,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문제를 일으킨다. 만취로 인해 행위능력이 줄고, 자제력이 상실되며, 폭력적으로 변한다. 각종사고에 시달리게 되고, 법을 어기며, 알코올중독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장기간 남용으로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정신적 능력이 쇠락하고, 영양 상태와 소화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자료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알코올의존증상의 증가, 알코올성 정신질환의 발생, 45-55세 사이의 사망자수 증가, 자살의 증가 등이 보드카를 사랑한 러시아인들에게 주어진 대가다.

한 전문가는 “친구, 가족, 자존감, 직업, 행복, 자유 등이 보드카를 마신 대가로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적었다. 술로 인한 문제는 음주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갖가지 갈등을 겪게 되고, 자녀들을 잘못 보살피게 되며, 정신질환이 발생하고, 태아알코올 증후군도 겪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에 술을 마신 러시아인들은 일탈적 생활에 익숙해 더 큰 문제가 된다.

사회도 고통을 받는다. 폭력, 범죄, 작업장 사고, 교통사고, 병치레, 저생산성, 과다한 건강비용 지출, 중독자 치료비 지출 등이 많다. 종교적 규범으로 인해 음주를 삼가고 있는 중동권의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공산권인 중국과 비교해 볼 때에도 큰 차이가 난다. 러시아가 더 많다.

러시아의 잡지 <가족(Family)> 1990년호를 보면, 러시아 부모 중 30%가 체벌이 가장 효과가 높은 교육방법이라고 응답했다. 10%는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20%는 채찍질을 가한다고 한다. 문제는 술에 만취한 부모의 가학적 채찍질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연간 2,000명의 어린이가 외과치료를 받았고 그 중 20명이 부모의 잘못으로 불구가 되었다. 발표 통계가 이 수준이니 음주어린이폭행의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이다.

술이 가족구조와 기능에 미치는 폐해도 상당하다. 15세까지의 아이 중 25%가 아버지가 없다. 6천5백만 가족가운데 1천만가족은 부모 중 한사람만 있는 것이. 아버지 없이 1천5백만 어린이가 자란다. 1백만 명이 소년소녀가장이다. 30만 명이 어린이집이나 고아원에 살고 있고 70만 명이 입양되어 있다. 부인의 67%가 이혼을 원하다. 이유는 남편의 음주벽이다. 술이 러시아 가족해체의 주범인 것이다.

추위가 길고 센 러시아는 자연 자체가 술을 권한다. 광대한 러시아에는 국적도 문화도 다양한 집단이 산다. 그들은 제각각 음주방식, 주량, 음주시점, 의학적 문제, 사회문제 등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자. 러시아 북방에 사는 사람들의 음주방식과 대사능력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북방주민들에게는 알코올중독이 3배 내지는 6배까지 높게 발생한다. 생업이 목축업이나 수렵 업인데 눈병과 귓병이 많아 고생들을 한다. 그들 중 25% 정도는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다. 결핵이환율이 중앙러시아 사람들보다 7배나 높고, 유아사망률이 4배 이상이고, 악성 종양도 2배 이상이다. 음주로 인한 상해나 중독증상도 1970년대 이후로 65.6배나 증가했다. 놀라운 증가율이다.

그들도 보드카를 마신다. 보드카를 좋아한 북부러시아인들 중 40-50%가 알코올의존증을 가졌다. 인종학적, 문화적 이유로 술문제에 차이가 난다는 증거다. 북방의 소수민족인 네넷족은 90.5%가 알코올성 환각증에 시달린다. 일반 러시아인들의 평균치는 44.6% 정도이다. 나라가 크므로 대책도 다양해야 곳이 러시아다.

 

술의 긍정적 활용과 대책

러시아 의학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을 치료제로 사용한다. 볼셰비키혁명 이전 병원에서는 치료목적 와인소비량이 국민 1인당음주량 보다 많았다고 한다. 알코올 치료는 소아과 임상에서 가장 많았다. 놀랍게도 의사가 어린이 환자에게 와인을 권했다는 것이다. 1800년대 문헌에는 45-55%의 어린이들이 의사에게 술을 배웠다고 적었다.

의학자 콤(A. Komb)이 1904년에 쓴 ‘어린이 질병매뉴얼’은 더 놀랍다. ‘알코올은 유익한 것이며, 6살이 넘은 어린이들을 치료하는데 매우 이롭다’고 명확히 적혀 있다. 당시 러시아 학계에서는 알코올을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했고 그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근대 러시아의 모든 의학과 약학서적에는 알코올의 사용법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처방전은 주로 식욕부진, 소화불량, 쇼크와 실신, 허혈증, 빈혈증, 부종, 외과적 통증 등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병원에서도 보드카를 구강치료시 마취제로 사용한 사례가 발견된다. 남부지역에서는 ‘드라이 와인’을 주로 사용한다는 자료도 있다.

러시아인들은 의약품보다 알코올의 효과가 낫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식욕을 높이고, 혈관을 확장시키거나 따스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거나 진정기능이 탁월하다는 입장이다. 노인들의 수명연장에도 알코올이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물론 남성은 1일 80-100그램 이하, 여성은 40-60그램 이하라는 단서조항이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진정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는 의사들에게도 술문제가 많다. 1990년대에 외과의사의 8%, 구강학의사는 7%, 응급의사의 6%가 알코올 독자로 조사되었다. 36%의 마취사, 27.4%의 외과의사, 14.3%의 X레이 기사는 1주일에 1회 이상 음주를 한다.

러시아인들에게 음주는 문화현상이자, 종교나 풍습과 관련된 전통적인 약이다. 알코올의존증 치료시 문화적 차이, 생활방식, 사회 심리적 특성 등의 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술이 원인제공자이자 의약품이니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만성음주자인 아버지를 딸이 살해한 사건가 음주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한다. 사회주의 국가시절 러시아는 알코올 문제를 숨겼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정책도 변할 수밖에 없다. 1930년부터 1985년까지의 통계에는 알코올 문제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구 10,000명당 조사결과 학교는 1.5개, 클럽은 0.58개, 도서관은 0.38개, 극장은 0.13개, 교회는 1.64개, 술을 파는 술집은 4.5개나 되었다. 과거 러시아의 알코올 문제를 알려주는 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다.

1990년대의 반 알코올 캠페인을 실패한 이후에 어디서나 얼마든지 술을 살 수 있다. 북극의 낭만과 심미적 문화가 사라져 가는 러시아에서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해 오던 보드카도 이제 맥주에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확대, 경제의 어려움, 자율의 증가 등 체제변화 속에서 러시아의 음주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가. 다른 나라 보다 예방이나 적극적인 치료에 대한 자료를 찾기 어려운 러시아, 봉급에서 술값이 차질하는 부분이 너무 큰 러시아, 효과는 적어도 시간과 장소 규제를 시작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그들의 음주문화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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