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동안 3대에 걸쳐 술 빚는 신평양조장
백련막걸리, 백련 맑은술 청와대, 삼성그룹 건배주로 유명
신평양조장의 백련막걸리 Misty
지난 해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선 대상 받아
술… 그놈 참 잘 익었구나!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후손까지 삶을 이어온 과정은 꼭 술이 익어가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종균이라는 곰팡이 씨앗에서 태어나 온도와 습도, 산도를 맞추어가며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돌보아 주면 이내 장성하여 건강한 술이 되고, 어느 순간 효모의 활동이 느려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마시기 좋은 상태에서 소모되어집니다.
오랜 시간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비록 이전의 술들은 소비되어 지고 없지만 그 동안 생겨난 작은 곰팡이들이 양조장 안 공기 중에 작은 공간과 틈속에 자리를 잡고 다음에 태어날 술들에게 정신(Spirits)을 공급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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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우리 삶의 발효가 끝나가고 부패되기 전에 우리의 후손에게 어떤 정신을 남겨주어야 하나 ‘미래의 희망’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신평양조장 체험장에 걸려 있는 액자에서>
국내 양조장사(釀造場史)에서 82년 동안 3대에 걸쳐 술을 빚는 집안이 있다.
충남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위치 해 있는 신평양조장(新平釀造場)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세 씨 집안이다. 1933년 창업자인 김순식(金順植) 씨가 그의 나이 24세에 양조장을 세웠고, 그의 아들인 김용세(73세)씨가 45년간 술을 빚어왔다. 지난 해 말 그의 아들 김동교(43세) 씨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줘 3대에 걸쳐 술을 빚게 된 것이다.
김동교 대표는 고려대를 나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부서 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 박람회장에서 신평양조장 부스에만 관람객들이 줄서서 백련 막걸리를 맛보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했다. 가업을 이어 술을 빚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동기였다.
신평양조장처럼 82년을 한 장소에서 술을 빚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용세 원장은 그의 아버지 얼과 정성이 여기저기 서려 있는 지금의 양조장을 고집스레 지켜오고 있다.
신평양조장에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오래된 고옥이며 80여 년 동안 술 빚은 항아리들. 개중에는 깨진 항아리를 철사로 꿰매 사용했던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신평양조장에는 김 원장이 보물처럼 간수 하고 있는 작은 책자가 하나 있다. 소화12년(昭和十二年, 1937년) 9월1일 당시 조선주조협회(朝鮮酒造協會)가 발행한 회원명부다. 여기에 신평양조장이 수록되어 있다. 82년의 역사가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업자가 운영하던 시절 각종 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장이며 감사장도 김 원장은 보물처럼 다룬다. 이런 저런 유물들을 대하노라면 그의 아버지가 아직도 옆에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평양조장이 최근 들어 갑자기 부상하고 있는 것은 KBS 대표 주말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에도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고, 이 보다 앞서 신평의 대표제품인 백련막걸리가 2008년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약주인 백련 맑은술도 지난해 삼성그룹 회장단 신년 만찬주로 사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행정학 석사가 좋은 직장 뒤로 하고 술을 배우다
김 원장은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했던 덕에 서울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경복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성균관대학에서 경제학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다. 공부도 할 만큼 해서 좋은 직장을 다닐 수도 있었건만 어려서부터 양조장을 놀이터로 삼아 왔던 김 원장은 술익는 그 향기가 못내 잊을 수 없어 서울 생활을 접고 양조장으로 내려왔단다.
그래서 아버지 곁에서 술을 배우고 술 빚기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종곡(種麯)을 배양하는 기술부터 배웠다. 전국에서 술을 잘 빚는다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술 빚는 기술을 배웠다.
이를 데이터화해서 최상의 술을 빚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어떤 때는 종곡실에서 48시간을 기다리며 종곡이 순간순간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김 원장은 말했다. “종곡실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합니다. ‘너희들 잘 지냈니?하면 비록 미생물에 지나지 않은 종국들이지만 대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술 빚은 탱크나 독에 대해서도 말을 건넨다고 했다. 마음 속 깊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정말로 좋은 술이 나오는 것을 느낀다는 말이 과장된 말은 아닌 듯 했다.
“정말 열심히 술을 빚었습니다. 술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그동안 퍼 버린 술도 엄청납니다. 그러면서 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점점 술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술익는 소리만 들어도 술이 잘 익어가는 지 어떤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술에 대해 도가 터졌다고나 할까.
충청도는 물론 서울까지 백련막걸리가 이름을 날려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평양조장은 2008년부터 당진군 명산품인 해나루쌀을 신평농협미곡처리장에서 구입하여 술을 빚는다. 좋은 쌀로 술을 빚어야만 좋은 술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2014년 술 품평회서 대상 받은 ‘백련막걸리 Misty’
“제가 젊었을 때부터 茶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땐가 스님과 함께 연잎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문득 연잎을 넣어서 술을 빚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연잎을 넣어서 술을 빚어봤죠, 그러나 연잎이 쉽게 발효되지를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연속된 실패에도 좌절 하지 않고 끈질긴 집념으로 개발해 낸 술이 오늘 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술이 ‘하얀 연꽃 쌀 막걸리’다.
하얀 연꽃 쌀 막걸리에 삽입되는 연잎은 연꽃이 다 지고 난 9월쯤 채취해서 茶처럼 몇 번에 걸쳐 덕음을 해서 사용하는데 하얀 연만 사용한다.
백련(白蓮)은 잎, 줄기, 씨앗, 꽃, 뿌리까지 우리에게 유익한 식물이다 특히 백련 잎에는 알칼로이드와 플라보노이드, 비타민B12, 비타민C 등이 들어 있어 피를 맑게 하고 술독을 풀어주고, 구취제거, 피부미용에 좋은 작용을 한다.
백련막걸리의 특징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는 것. 숙취가 없다는 것. 6-7도로 목넘김이 좋고, 술이 빨리 깬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김동교 대표가 잘 나가던 직장에 2009년 사표를 던지고 아버지 밑에서 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한창 ‘백련’이 출하되기 시작 할 때다.
김 원장은 당시 아들에게 “술을 하려면 제대로 해보라”며 술 공부터 시켰다. 막걸리 학교(4기)를 다니기도 하고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술 공부를 했다.
“처음에 아들이 직장에 1년 간 휴직 계를 내고 술을 배우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안 된다. 술을 하던지 직장을 다니던지 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아들이 직장에 사표를 쓰고 술을 시작했습니다. 월급은 직장 다닐 때 딱 절반만 주고요….”
김동교 대표는 술을 배우는 한편 직장 다니면서 터득한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짜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머니가 화가여서 술병 디자인부터 바꾸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주병보다 몇 배나 비싼 유리병으로 바꿔 출하를 했다.
김동교 대표는 “일반 제품처럼 좋은 술만 내놓으면 잘 팔릴지 알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역 햅쌀로 빚고, 유리병에 삽입해 원가가 비싼 막걸리를 구입하는 중간 유통업체는 거의 없었다. 결국 스스로 고객을 찾아야 했고, 고객에게 최적의 신선한 막걸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서울 강남에 양조장 직영 막걸리 전문점(CHEZ MAAK:셰막)을 운영하게 되었다. 소비자에게 막걸리를 알리는 접점을 우선은 가까운 음식점에서,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김동교 대표는 말한다.
이런 다양한 시도와 변화와 맞물려,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전시품목 막걸리, 2011년 일본 첫 수출, 2012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살균탁주 부분 대상, 2013년 ‘영국주류품평회(IWSC)’ 브론즈 메달 수상, 2013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약주 부분 장려상 수상 등, 막걸리 문화 산업에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해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는 생막걸리 부문에서 ‘백련 막걸리 Misty’는 당당하게 대상을 받았다. 이 모두가 좋은 술을 빚어 마케팅을 잘 한 덕이 아닐까 여겨지는 대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에 ‘신평’ 선정
2013년 5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 지역의 역사 깊은 지역 양조장의 환경 개선, 주질 관리, 홍보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체험 관광이 결합 된 지역 명소로 조성하고, 양조장 관광을 체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전개했다. 이 사업으로 서해안 여행과 연결되는 충남 당진시의 ‘신평양조장’과 단양 8경으로 이어지는 충북 단양군의 ‘대강
양조장’ 2곳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바 있다.
이 또한 김동교 대표가 신평양조장 경영 전반에 나서고 나서 막걸리에 트렌드를 입혀 차별화된 모습으로 우리 술 막걸리를 널리 알리는 일에 힘쓴 덕이라 여겨진다. 2대와 3대는 자연스럽게 업무를 분담하여 오랜 숙련이 필요한 막걸리 제조는 2대 김용세 원장이, 경영관리는 김동교 대표가 각각 분업을 통해 경영관리를 해왔다.
‘찾아가는 양조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즐겨 찾는 여행코스가 돼서 신평양조장은 2013년 가을부터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막걸리 문화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 체험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다양한 ‘우리 술’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오감으로 느끼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항아리에서 뿜어내는 이제 막 발효된 신선한 막걸리 원액의 향, 그리고 힘차게 탄산을 뿜어내는 막걸리 발효 본연의 모습, 날짜별로 숙성되어가는 막걸리 비교 시음 등 막걸리 하나로 다양한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체험 객들이 김 원장에게 “막걸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막걸리는 ‘문화’이며 ‘철학’이고, ‘과학’과 ‘예술’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막걸리가 문화인 것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전통이 막걸리에 녹아 있기 때문이며, 막걸리가 철학인 것은 막걸리에는 철학처럼 숨어 있는 것이 많아서며, 막걸리가 과학인 것은 종균이 쌀을 먹고 자라면서 알코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며, 예술인 것은 술 담그는 장인의 손길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종균을 예쁘게 키우면 맛있는 술이 나오고 조급증이 많은 사람이 술을 빚으면 술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신평양조장의 막걸리 체험장은 이제 대기업들의 연수코스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는 양조장은 우리가 전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시발점과 같기 때문이다.
젊은 신세대 주당들로부터 인기 끄는 ‘셰막’
발상 중에 역발상이 실패율도 높고 성공률도 높다. 한식과 일본 음식이 넘쳐나는 감남에서 한식 메뉴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퓨전 음식을 안주로 막걸리 바를 연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역발상일 수 있다.
신평양조장의 김동교 부사장(당시)은 과감하게 강남에다가 220명이 동시에 마실 수 있는 대형 막걸리 바 ‘셰막(CHEZ MAAK)’의 문을 2012년에 열었다. ‘셰(CHEZ)’라는 말은 불어로 집이라는 뜻이고 막은 막걸리는 뜻으로 한 마디로 ‘막걸리 집’이지만 ‘셰막’이란 이름 자체가 까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술안주는 롯데호텔 출신의 한영철 셰프가 필두가 되어 이탈리아 요리와 접목한 한식을 고급스러운 플레이트와 함께 제공하고 있는데 고객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신평양조장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자사 막걸리만 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막걸리와 국산와인까지 우리 농산물과 연계된 다양한 전통주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제 ‘셰막’은 젊은 신세대 주당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초저녁부터 젊은 연인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고 있을 정도다.
현재 강남점 말고도 가로수 길에도 셰막이 영업 중이다. 두 영업점에 근무하는 직원만도 30여명에 달할 만큼 성업 중이다.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호기심이 가득한 김용세 원장은 오늘도 새로운 술 재료를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언젠가는 주당들 앞에 더 좋은 술을 개발하여 선보일 것이라 믿고 싶다.
왜냐 하면 현재 신평양조장에선 소주(증류식)면허까지 확보한 상태고 동으로 된 유럽식 소줏고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