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보기(202)
지역 전통주 연구소가 필요한 이유
최근 쌀 소비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벼농사를 중요시하는 지자체에서는 전통주 소비 활성화를 통해 지역 농산물을 소비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지자체들은 소비 활성화를 위해 행사를 개최하거나 양조장에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은 장기적인 소비 활성화보다는 단기적으로 쌀 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가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역 전통주의 장기적 발전 계획과 전통주 연구와 관련된 부분이다. 과거부터 전국 단위의 전통주 연구소 또는 ‘한국술 산업 진흥원’(가칭)과 같은 기관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전통주 연구라고 하는 것이 꼭 술 제조나 미생물을 연구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주 정책을 발굴하고 장기적인 전통주 진흥 사업 연구도 연구소에서 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여러 여건상 이러한 전국 단위의 연구소 설립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별 전통주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거점 대학과 연계해 운영한다면 지역 전통주는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 전통주 연구소는 전국 단위의 연구소와는 다른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지역 특산물과 전통주의 연결 강화이다. 전통주는 오랜 시간 동안 각 지역의 기후와 특산물에 맞춰 발달해왔다. 다양한 지리적 특성과 기후로 인해 지역마다 고유한 재료와 제조 방법으로 특색 있는 전통주가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 특산물 대신 대량생산이 가능한 원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전통주의 고유 정체성이 약화하고 있다. 지역별 전통주 연구소는 각 지역의 특산물과 전통주 제조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고유한 전통주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특산물의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지역 고유의 전통주 브랜드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전통주의 품질 관리와 연구 지원이 가능해진다. 지역 전통주 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영세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거나 품질을 향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소규모 전통주 양조장들은 연구 기능이 부족하여 발효 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신제품을 개발하려 할 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며, 컨설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기관도 거의 없다. 지역별 전통주 연구소는 전통주의 품질 관리와 연구 지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는 지역에서 주류 분석을 해주는 곳이 없다보니 양조장들이 자신의 술에 대한 기본 데이터로 가지고 있지 못한곳들이 많이 있다. 연구소에서는 양조장별 맛, 향, 발효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품질 관리를 통해 소비자에게 안정적이고 일관된 전통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소규모 양조장과 협력하여 품질을 개선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지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통주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연구 지원의 결과로 전통주의 현대화가 기대된다. 최근 젊은 소비자들은 다양한 맛과 디자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현대적인 주류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전통주가 더 많은 소비자층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현대화와 혁신이 필수적이다. 지역별 전통주 연구소는 전통주 제조 과정에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소비자 취향에 맞춘 다양한 전통주를 개발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발효와 숙성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맛과 향을 개선하거나, 젊은 층이 선호하는 과일 향을 추가하는 등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현대적인 패키지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여 전통주가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은 전통주의 전통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다. 전통주는 각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최근 관광산업이 발달하면서 전통주는 지역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이 아니어도 지역 전통주 연구소는 전통주와 관광산업을 연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울 수 있다. 전통주와 관련된 축제와 행사를 기획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는, 지역별로 찾아가는 양조장을 선정하고 지원함으로써 지역 관광자원을 발굴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 전통주 연구소는 단순히 전통주만을 연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지역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소비시키는 중요한 농업 및 산업 연구기관이자, 전통주의 품질 개선, 지역 경제 활성화, 지역 문화유산 보존, 지방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 발전 연구소 또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전통주 연구소가 설립됨으로써 지역 전통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지역 전통주가 더 널리 알려지며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 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