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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술 제조 비법을 전한 백제인 수수허리

수수보리가 일본 오진 천황에게 술을 바치는 모습

일본에 술 제조 비법을 전한 백제인 수수허리

 

박정근(문학박사, 작가, 시인, 황야문학 주간)

 

백제에서 술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인번(仁番)’이다. 인번(仁番) — 일본 고대 기록인『고사기』와『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계 인물로 술을 빚는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흔히 ‘수수허리(須須許理, 스스코리)’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수수허리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술 빚는 기술을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한·일 고대 술 문화의 교류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특히『고사기』에서는 수수허리가 만든 술을 마신 응신천황(應神天皇)이 크게 취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제에서 술로 유명한 사람”은 단연코 수수허리(須須許理)이고 그가 일본에 양조기술을 전해 백제와 일본의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고사기』에는 백제와 일본의 술 교류에 대한 유의미한 기록이 있다. “술을 빚는 일을 아는 사람으로 이름이 인번(仁番)이며, 또한 수수허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건너왔다. 이에 수수허리가 큰 술(大御酒)을 빚어 바쳤다.” 이것은 백제를 위시한 고대 한반도에 발효기술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증한다.

중국의『삼국지』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自喜善藏釀(스스로 술과 발효물을 잘 저장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백제의 술을 설명하는 기록은 아니지만,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곡물 발효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술 전래사에 의하면 인번과 수수허리가 동일인 또는 별명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수수허리가 주조한 술을 응신천황이 마시고 취해 노래하는 대목도 발견할 수 있다.

 

수수허리가 빚은 술에

나는 취해 버렸구나.

근심 걱정을 없애주는 술,

웃음을 자아내는 술에

나는 취해 버렸구나.

 

특히 “事無酒(ことなぐし)”와 “笑酒(ゑぐし)”는 술의 효과를 의미하는 단어로 “무조건 액운을 없애는 술”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술”로 해석할 수 있다. 수수허리가 주조한 술을 마신 응신천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술을 마신 응신천황은 기분이 좋아져 길을 가면서 지팡이로 길 가운데 있는 큰 돌을 쳤는데 그 돌이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어서『고사기』는 “故、諺曰、堅石避酔人也.”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단단한 돌도 술에 취한 사람을 피한다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일본 사회에 ‘그래서 ‘단단한 돌도 취한 사람을 피한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반도인 핫타가문이 세운 사케의 신을 모신 마츠오타이샤 입구

응신천황이 술에 취해 지팡이로 단단한 바위를 제거했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로 술에 취하면 흥이 나는 현상을 암시한다. 천황이라도 술에 취하면 그에게 씌워진 권위적인 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발견한 견고한 돌을 지팡이로 칠 수 있는 정신적 상태는 어떤 규범을 벗어나 파격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놀이유형의 사고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신천황은 통치자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당위적 규범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인으로서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의 삶은 판에 박은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자칫 그는 매우 무료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

수수보리가 일본 오진 천황에게 술을 바치는 모습

그런데 그는 수수허리가 빚은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된다. 음주가 일으킨 효과로 인해 통치자로서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자연인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자연인은 인간 사회의 규범보다는 재미를 추구하고 일탈과 해방을 즐기고자 한다. 그는 해방적 행위를 즐기기 위해 지팡이로 단단한 돌을 친다. 통상적으로 지팡이는 단단한 돌에 부딪히면 부러지기 쉽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돌이 제거되고 사라진 것이다. 이 순간 응신천황은 매우 파괴적인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바로 음주를 통해 성취하는 놀이의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응신천황이 음주를 통해서 체험한 두 번째 효과는 순간적인 파괴력을 얻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인간이 발휘하는 힘은 매우 제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만을 사용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취하면 잠재되어 있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큰 힘을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 익숙해진 인간의 몸은 육체적인 힘을 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본다.

응신천황

하지만 술을 마시고 흥분하면 인간의 몸은 잠재된 힘을 소환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우는 화재현장이나 위기에 놓인 인간이 평소에 들 수 없는 무게를 번쩍 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응신천황이 지팡이로 단단한 돌을 쳤는데 제거되어 사라졌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그가 괴력을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신천황이 보여준 괴력은 술이 가진 긍정적인 효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여하튼 백제 수수허리가 빚은 술을 응신천황이 마시고 긍정적인 효과를 향유했다는 것은 일본의 관점에서 백제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생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신천황에 대한 술에 관한 기록에서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발효 문화가 일본에 도래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술의 상징적인 브랜드인 사케가 백제의 수수허리와 관련되어 발전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수수허리의 양조기술이 사케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첫 단계로 백제계 도래인 수수허리가 일본에 양조기술을 전한다. 두 번째 단계는 그가 응신천황에게 술을 빚어 헌상했다. 세 번째 단계로 백제 양조문화가 일본 왕실의 양조문화에 편입한다. 마지막으로 후대 일본의 누룩·쌀 양조기술 발전에 기여한다. 결국 수수허리의 양조기술이 현재의 사케 문화로 발전시켰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 사케가 수수허리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지나친 표현일 수 있다. 일본에도 이전부터 술이 있었고, 수수허리의 양조술이 기존 양조문화에 한반도계 기술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전승으로 보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힌 해석이라고 본다. 모든 문화란 강물처럼 흐르며 서로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