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아뿔싸
시인/부동산학박사 육정균
“가야지 이 불볕더위는 가야지” 했는데, 진짜 폭염 대마왕 8월도 가고 연중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다. 아직 9월 초인데도 밤공기는 19도까지 떨어져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필자는 과천청사에서 세종청사로 이전한 다음 해인 2013년에 공주시 정안면 홍길동이 활동했다는 무성산 자락에 노후에 글을 쓰며 기거할 터전을 마련했다. 전원주택부지로 구입한 것이지만 농지이기 때문에 공직에 있을 때부터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농사방법 등을 공부하며 서툴지만 농사를 짓고 있다. 허나, 농사짓는 일은 땀 없이 불가능한 일이며, 머리 또한 잘 써야 하는 자연과학이다. 절기도 놓치지 않고, 제때 계절을 맞추어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정성껏 공을 들여야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농사이다.
농부는 매년 폭우와 홍수 등 물난리로 홍역을 치르거나 갑자기 오는 서리나 우박 피해 등 냉해를 입어서 농사를 폐농하기도 한다. 천만다행으로 쌀과 고추 농사를 잘 지었어도 판로 문제가 있다.
자연과 싸우며 농사를 짓는 힘겨운 노동으로 손은 거칠어지고 뼈마디는 굵어 지지만 대풍을 맞아도 판로가 어렵고, 겨우 팔아도 비료와 농약값, 인건비 제하면 별반 소득이 없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 시골엔 젊은이가 없다. 공직 은퇴 후 초야에 묻혀서 글을 쓰려고 열심히 13년간 터전을 가꾸고 있는 70을 눈앞에 둔 필자가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 중에는 제일 젊은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조그만 규모의 축산업이나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경우에도 동남아 젊은이들의 일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젠 농촌은 국토계획법상 농사를 주로 짓는 농림지역이나 보존·생산·계획관리지역 등 집 짓고 생활의 기반이 되는 토지들로 단순 분류하기보다는 드론으로 농약이나 비료를 주고, 트랙터나 콤바인 등으로 대규모 기계화 영농이 가능한 『절대 영농지대』와 농사보다는 전원주택이나 도시인들의 5도 2촌 용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한계 영농지대』로 나누어 용도지역을 구분·관리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도시계획 및 부동산 전문가로서 역설하고 밝힐 수밖에 없다.

요즘은 대개 김치를 사 먹는 시대지만, 우리 집은 매년 11월 말쯤 필자가 가꾼 김장배추와 무로 김장하는 수고가 이어진다. 아내나 나 모두 힘이 들지만, 내가 가꾼 믿을 만한 채소와 고춧가루로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믿음과 행복감에 힘든 노동도 보상받을 수 있고, 힘들지만 자식과 동기간들과 나누어 먹는 기쁨도 역시 행복을 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임 배추를 사지 않고 내가 가꾼 배추로 김치를 담그려면 절대적으로 놓치면 안 되는 것은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파종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8월 초부터 김장거리를 심을 밭을 일구고, 퇴비를 뿌리고, 비료나 기타 밑거름과 토양살충제를 뿌려서 두둑을 만든 다음, 비닐멀칭을 한 후 8월 말이나 9월 초순까지는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파종해야만 한다. 그러니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에는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 쓰러져 죽을 수도 있다”고 아예 여름 한낮 농사일을 정부조차 금지하지만, 그늘에서 몸 관리나 하며 쉬기만 한다고 누가 밭을 일구고 퇴비를 뿌리고 제때에 배추모종 한 포기라도 심어준단 말인가?
농사일도 절기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려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에 필자도 8월 폭염에도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곤 했다. 넓은 밀짚모자에 얼굴 전체를 햇빛 가리개로 완전 중무장을 하고 긴바지에 긴팔 옷을 입고 소금과 얼음물을 잔뜩 준비해서 연방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가 1시간 간격으로 맑은 시냇가에 가서 작업복을 입은 채 미역도 감으며, 올해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김장거리를 심었고, 어제는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까지 이중으로 설치했다.
그렇지만 아뿔싸! 매일 밭일을 갈 때면 아내가 이것저것 정성껏 반찬을 만들고 옥수수나 고구마를 쪄서 간식까지 밭일하는 데 필요한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는데, 아내는 늘 냉장고 한켠에『도시락통』을 만들어서 밭에 싸갈 음식을 넣어놓고, 필자는 아내가 챙겨준 음식들을 도시락 가방에 챙겨서 새벽 이른 시간에 농장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점심 무렵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왜? 점심으로 쪄놓은 당신 좋아하는 찰옥수수랑 고구마는 놔두고 반찬만 가지고 갔어? 당신 점심으로 뭘 먹어?” 옥수수와 고구마를 점심과 간식으로 쪄놓았지만, 너무 뜨거워서『도시락통』에 함께 담아놓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지롱! 내가 아침에 개미지옥처럼 농작물을 마구 뜯어먹는 벼룩잎벌레, 배추 청 벌래, 진드기, 노린재 등을 유인해서 죽이는『막걸리 꿀단지 지옥』을 만들려고 마트에서 지평, 장수, 국순당, 나눔, 우곡생주, 복순도가, 해창, 느린마을, 담은, 골목, 우도땅콩, 경주법주, 공주밤, 달빛유자, 바밤바밤, 심술 등 막걸리 중에서 커다란 지장수 생막걸리 네병과 설탕 한봉지를 사왔잖아. 게다가 가져온 반찬이 고추 멸치 조림과 묵은지니 막걸리 안주로도 딱이잖아? 승용차에 연료 넣듯 허기도 채우고, 점심대용으로 막걸리 딱 한 잔! 얼씨구 지화자 좋구나! 좋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현 국토교통부 민원자문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