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열매가, 툭―
이 영 식
산수유는
가지를 흔들지 않는다
바람에 놓인 나무가
알알이 호명할 때 기다릴 뿐
저 혼자
길을 가지 않는다
새들 떠나고
물소리 깊어지는 날
세상 먼지 떨구지 못하고
걸음 옮길 때 툭―
누군가 내 어깨를 친다
바늘 한 움큼 집어삼킨 겨울산
산수유나무가
작고 가벼운 몸짓으로
알 붉은 열매를 떨어내는 것이다
잠언 알갱이 몇 개
눈밭에 박혀 있다
언 뿌리 발치에 떨어진
나무사리,
손에 주워 모으니
온몸이 따뜻하다
어디선가 바람경經 읽는 소리
은자隱者의 숲이 환하다.
♧봄의 전령이었던 산수유나무가 계절 바꿔가며 익힌 씨앗이 새하얀 눈밭에서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알 붉은 불꽃의 힘으로 머지않아 새봄의 발전소는 다시 터빈을 돌리기 시작하겠지요. 새소리가 떠나도 숲이 적막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영식 시인
경기 이천 출생. 2000년「문학사상」등단.
2011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2012년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수상(문학부문).
2012년 전국시낭송대회 최우수상 수상.
시집:「휴」,「희망온도」,「공갈빵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