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년 지기 친구들과 즐긴 술
박정근 (문학박사, 작가, 시인, 황야문학 발행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50년이 된 친구들이 졸업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교 교정에서 다시 모였다. 오십년 전 푸릇푸릇한 청년들이 벌써 칠순을 맞이하다니 세월은 참 빠르기만 하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사실 모두들 육체적으로 한물이 간 존재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친구들의 얼굴 표정에는 아직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의 기죽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앞으로 삼십년 이런 기분으로 쭉 가야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잔에 술을 부어 열심히 살아온 각자의 삶을 자축하였다.
친구들의 면면을 보니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에 자신이 없는 친구들은 나이의 무게만큼 언행도 매우 진중해졌다. 술은 기분을 살리려는 미미한 약제일 뿐 술에 지지 않겠다는 심리가 읽혀진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신중한 표정으로 기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한 친구가 술을 많이 마시다 쓰러진 자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입에 올리면서 장수하려면 절제가 최고라고 설득한다. 낭만과 지혜를 갖춘 까닭일까. 앞으로 삼십년 우정을 즐기려면 젊은 시절의 패기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취와 절제는 술에 대응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느 것도 술의 진정한 가치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지한 것만을 추구한다면 얼마나 고지식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것인가. 인간은 항상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농담과 유머가 가득한 놀이를 즐기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잔인하고 삭막할수록 더욱 놀이를 창조하고 인생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것이리라. 헐벗은 나무 한 그루밖에 없는 황무지에 사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 샤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재현한 인간의 비극적인 딜레마를 체감할 수 있다.
황무지에 살고 있는 고고와 디디는 그들을 구원해줄 고도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결코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고고와 디디는 할 일이 없어 시간을 어떻게 소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한다. 그저 무의미한 말을 주고받거나 모자를 서로에게 던지는 놀이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구원해줄 고도는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며 오지 않는다. 아마도 베케트는 이 작품을 통해 메시아를 기다려온 인류의 절박한 심정을 그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한다. 오랜만에 만나면 매번 같은 이야기를 소재를 삼아 떠들어댄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베케트가 그린 고고와 디디를 닮아있다. 대화의 소재가 없으면 술을 권하며 대화의 단조로움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점점 술에 취해가면 같은 이야기를 연실 반복하며 우정을 즐긴다. 고고와 디디가 그랬듯이 무의미한 말들을 서로에게 던지면서 밤이 깊어가도록 술과 대화를 즐기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끔 어려운 일로 속이 답답할 때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진통제 삼아 마신다. 마음이 아파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인생의 패배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술을 창조했으리라. 하지만 광적인 도취를 사랑했던 디오니소스가 어찌 슬픈 분위기만을 위해 인간에게 술을 선사했겠는가. 디오니소스의 사도들인 메나드들은 제의를 진행하는 동안 술을 마시고 완전히 몰아지경의 도취에 빠진다.
이런 경지는 어떤 개별적인 계산이나 생각을 용인하지 않는다. 오로지 디오니소스가 허락한 도취의 공동체를 이루며 광란의 춤과 노래를 즐기며 일체감을 느끼려고 한다. 그렇다면 술을 즐기는 우리도 술을 통해 아폴로적인 개별적 관념을 극복하고 통합적인 사회공동체를 건설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도연명은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그의〈잡시(雜詩)〉에서 적합하게 노래하고 있다. 역시 술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의 축제 분위기에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려는 개별주의적 경향을 고수한다면 축제는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마치 각각의 물방울들이 자신만의 경계를 허물어 거대한 바다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족 단위의 피붙이만이 형제라고 고집해도 마을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 크고 작은 대소사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축하하고 돕던 두레정신이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여 술을 나누면서 파안대소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축제 정신이다.
落地爲兄弟,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인데
何必骨肉親. 어찌 반드시 피붙이끼리만 친하겠는가
得歡當作樂, 기쁜 일이 있으면 마땅히 함께 즐겨야 하니
斗酒聚比鄰. 한 말 술을 내어 이웃들을 불러 모으리라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는 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기쁨으로 가득한 현재 이 순간이 되어야 한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고 즐기는 시간을 결코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현재라는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쾌락주의적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쾌락의 현재성에 집중하지 않으면 행복을 획득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잡시〉에서 분명하게 밝힌다.
盛年不重來, 한창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며
一日難再晨.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오지 않으리
필자는 친구들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술을 권하고 함께 노래하고 싶었다. 나이 칠십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은 십년 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쳤지만 과연 몇 명이나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리라. 연로한 은사님들이 소수이듯이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도연명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기에 더욱 축제의 현재성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노래하는 것이다.